말씀드린 것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금식을 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때문에 그런 이유로 금식하라고 하는 것을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에스더가 금식 후 왕 앞에 나아갔던 것은 하나님이 죽이시면 죽겠다는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면 살려주신다거나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금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금식 후 왕 앞에 나아갔다는 것 자체가 성경을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다'는 예수님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더의 금식에 이처럼 자기 희생이 담겨 있음을 생각한다면 참된 금식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금식을 통해서 뭔가 이룬다거나 우리의 신앙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금식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목사 눈치보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뭐라 하든 복음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고 안하고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목사가 하라고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금식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다만 일부러 금식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에스더가 금식 후 왕 앞에 나아갔던 것은 하나님이 죽이시면 죽겠다는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면 살려주신다거나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금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금식 후 왕 앞에 나아갔다는 것 자체가 성경을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다'는 예수님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더의 금식에 이처럼 자기 희생이 담겨 있음을 생각한다면 참된 금식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금식을 통해서 뭔가 이룬다거나 우리의 신앙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금식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목사 눈치보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뭐라 하든 복음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고 안하고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목사가 하라고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금식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다만 일부러 금식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