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울이 다윗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라고 물은 것은, 어린 몸으로 골리앗이라는 장수를 죽인 다윗의 가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울은 다윗의 아버지가 이새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새의 집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누구인지 몰라서 한 질문이라기보다는 다윗과 같은 인물을 둔 집안에 대해 물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접한 여인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것은 아래의 제 설교 원고 일부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러면 죽은 사무엘이 다시 나타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신학자들의 의견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타당하게 여기는 것은 사단이 사무엘의 혼을 가장하여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사단이 가장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짜 사무엘의 혼이라면 무당의 술수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가장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편하게 이해하는 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사무엘을 가장하여 나타났다면 15-19절까지의 사무엘의 말은 사단의 말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한 말의 내용을 보면 도저히 사단의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울의 잘못됨을 책망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여 세우시고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사울이 죽는다는 것에 대한 예고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다시 세워서 사울을 책망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단이 사무엘을 가장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사무엘을 다시 사울에게 보내셨다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해도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당이 사무엘을 불러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당을 통해서 사무엘을 사울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냐? 라는 의문도 제기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을 부르기 위해 뭔가 행했다는 것이 없습니다. 11절에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하자 12절에서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되어 있을 뿐 사무엘을 부르기 위해 주문을 왼다거나 무녀 춤을 추는 등의 무속 행위를 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무엘은 신접한 여인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자가 다시 나타날 수는 있는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민수기에 보면 발람이라는 선지가가 나귀를 타고 가다가 나귀로부터 책망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나귀가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관심은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나귀가 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이 아니라 ‘나귀를 말하게 하셔서 발람을 책망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은 것처럼 ‘죽은 사무엘이 다시 나타날 수 있느냐? 그러면 죽은 자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과 호기심보다는 ‘하나님이 죽은 사무엘을 다시 사울에게 나타나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라는 관심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죽은 사무엘을 만나고 싶어 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15절의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려 올렸나이다”고 말한 내용을 보면 사울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이라는 급한 문제를 자신의 급한 문제에 해결을 위해 사무엘을 만나고 싶어한 것입니다. 모든 관심이 자신의 문제 해결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라고 말한 것을 보면 마치 사울이 불러서 나타난 것처럼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사울에 의해서 사무엘이 나타난 것처럼 이해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이 말은 사울의 불순종과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사무엘을 사울에게 세우신 것을 두고 한 얘기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쨌든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사울에게는 아마 하나님은 자신의 물음에 답하지 않으셔도 사무엘이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말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울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버립니다. 나타난 사무엘마저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살아있을 때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확증하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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