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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와 성령 강림의 사건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 강림은 사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미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고 함께 하심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의 사건이 또 다시 반복될 이유가 없습니다.

즉 이미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또 다시 사마리아에 성령 강림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신 성령이 사마리아의 택한 백성에게 함께 하여 그들을 부르시고 믿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행 8:6-8절에 보면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말합니다.

사마리아에서 빌립이 복음을 전함으로 나타난 이 현상들이 과연 성령과 상관없이 가능한 일일까요? 빌립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 말을 따르는 것은 성령의 다스림이 아니면 안됩니다. 또한 귀신들이 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들이 나았다는 것도 성령이 역사한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사마리아는 이미 성령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이 있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은 사마리아만이 아니라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행 10장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유대인처럼 율법을 지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기에 율법에 매인 자가 아니었음을 생각한다면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를 가게 하시고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말합니다(행 10:44절). 이 경우도 문자 대로 하면 고넬료가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성령이 임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던 것은 성령이 임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일일까요? 성령이 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10:4절에 보면 고넬료는 천사를 만났고 천사는 고넬료에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는 말을 합니다. 따라서 고넬료는 이미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음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자에게 성령이 임하였다고 말씀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고넬료를 제외하고 다른 말씀을 듣는 사람들만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억지적인 해석입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다면 그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있던 고넬료도 포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 19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자 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 역시 문자대로 하면 바울이 세례를 주고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에베소에는 성령이 없었다는 뜻이 되고 그렇다면 당시 에베소 교회의 믿음은 모두가 거짓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는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남깁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어느 일정 지역에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대로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이미 세상은 성령의 다스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다른 지역에서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이 있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 1: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은 이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역사하시면서 예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으로써 제자들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통하여 함께 하시고 그들과 연합된 관계에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여전히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신다는 증표는 오직 성령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하셨으니, 예루살렘이나 유대나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서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다스리시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역사하신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성령이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없다가 성령이 임함으로 비로소 계시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이 역사하고 계셨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다스려지고 있음을 증거하기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끝으로 표현되는 에베소에서 성령이 임하는 사건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 행전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증거하는 성경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 이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한 순서에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의 구원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창세전에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택하였다는 그 계획에 이미 신자의 구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표적이 있고 복음이 전하되고 물세례 받고 성령 세례 받는 이런 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표적이든 복음전파든 물세례든 그 모든 것들은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예수님의 다스림 아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자된 길로 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일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교회에 편입되었다는 증거물로서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여전히 살아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우리의 힘으로 누군가를 불러서 교회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전도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예수님의 전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구요? 그래서 전도는 설득이 아니라 선포인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내어 그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성령을 받는 것도 사도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도들을 보내어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권에 의해서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것이라면 사도행전에 성령이 임하는 모든 사건들이 사도가 기도할 때 성령을 받는 것으로 동일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는 사건은 동일한 형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사도가 기도할 때 임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도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하는 사건은 사도권이라는 것과는 무관함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마치 목사가 성령을 주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모두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사에게는 성령을 줄 권한이 없습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인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에 대한 질문

예수님이 행하시는 생명의 사건은 단지 우리의 구원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사건이 우리의 구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질문하신 대로 굳이 에디오피아 내시의 사건을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한 사건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명 사건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사건입니다.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에디오피아 내시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내시는 여왕의 국고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비록 내시지만 그 권력은 막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주의 사자는 이미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행 8:29)고 합니다. 물론 성령이 실제로 말씀하셨다기 보다는 성령이 빌립의 마음을 움직여 수레로 가까이 가게 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결국 내시가 빌립으로 인해 복음을 듣고 세례까지 받은 일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철저한 예수님의 간섭과 인도함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기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서 그 삶의 모든 여정을 관리하시고 인도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보내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손에 맡기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일임을 보여주시는 것이 내시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시가 빌립을 만나고 복을 듣고 세례를 받은 이 일은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음의 기쁨의 길을 가게 된 그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고, 나의 뜻이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나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결과임을 증거해 줍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되는 것이고, 이 믿음이 힘이 되어서 모든 일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고 세상을 부러워 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현재의 어려움에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에 대한 질문

방언은 언어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즉 일반 사람은 방언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방언을 하는 사람은 일반 사람과 단절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임했을 때 방언이 등장하는 것은 성령으로 인해 단절, 즉 구별된 관계가 발생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교회가  방언을 단지 은사로만 여기는 것은 방언에 대한 큰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방언에 해당됩니다. 복음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방언에 해당되기 때문에 성령 받지 않으면 복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실 때 방언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이 성령 받지 못한 사람과의 구별을 의미한다면, 성령 받은 사람들과 관계에서는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서 언어가 각기 갈렸습니다. 언어가 다름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나누어졌습니다. 이처럼 나누어진 관계가 복음 안에서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오직 성령 받은 사람들만이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같은 마음과 같은 뜻과 같은 말을 하게 되는 하나 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전이 휘장이 갈라졌을 때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의 임함과 함께 방언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추신 – 제가 질문에 답을 드리기 가장 편한 날이 월요일, 화요일입니다. 수요일부터는 설교준비와 주보를 만드는 일 때문에 답이 늦어지게 됩니다. 답을 드리는 일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질문하시면 제가 좀 더 편하고 여유 있게 질문을 생각하고 빠른 시간에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빚진자 2011.11.14 22:24
    늘 성실한 답변,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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