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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을 구원론적 시각에서만 바라보게 되면 질문하신 것처럼 고넬료의 경건한 삶과 구원의 연관성에 있어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주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 구원에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고넬료의 경건한 삶과 그의 구원 여부를 증거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고넬료의 경건한 삶을 구원으로 연결하여 생각하게 되면 ‘이미 구원 받은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있게 됩니다. 경건한 삶을 구원 받은 신자의 증표로만 생각하게 되면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게 되고, 남은 여생을 계속 경건하게 살다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천국에 가서 큰 상을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성경은 결국 한 개인의 일생을 소개하는 위인전으로 둔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소개하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위인전 말입니다.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는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서도 아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경건한 삶이 구원의 길은 아닙니다. 구원은 길은 오직 십자가이기 때문에 고넬료가 하나님께 상달될 정도의 경건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십자가 복음을 알지 못하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알지 못한 고넬료가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복음과 상관없이 고넬료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고넬료의 경건한 삶을 평가절하 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삶을 구원과 연결하여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경건한 삶을 구원의 증표로 생각한다거나 하나님이 고넬료를 선택한 이유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의도에 벗어난 것이 됩니다.


욥을 보면 욥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욥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사탄 앞에서도 인정하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구원의 전부였다면 욥의 인생은 그렇게 부를 누리며 계속 흘러갔어야 합니다.


하지만 욥의 인생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실패가 닥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욥의 신앙에 의문을 품은 사탄에 대해 욥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성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몰랐던 욥이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경우도 경건한 삶에 초점을 두게 되면 마치 그것이 구원의 증표이며 따라서 고넬료는 더 이상 배워야 할 것도 깨달아야 할 것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결국 고넬료의 경건한 삶을 본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만 남발될 것입니다.


  
2. 하늘에서 나려온 그릇에 담겨 있는 것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먹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규정된 부정한 것들입니다. 베드로가 비록 시장한 상태였지만 하나님이 먹으라고 한 것을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거부합니다. 베드로의 이 같은 반응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신앙 습관이나 전통을 중시하는 인간성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속되고 더러운 것으로 규정된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릇에 담긴 것을 먹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온 신앙이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이 지켜온 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가서 그 같은 환상을 보게 하시는 것은 율법적 시각에서 속되고 거룩한 것을 구분하는 유대교적 전통에 붙들려 있는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를 만나지 않으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대교적 전통에 붙들려 있는 베드로가 어떻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사도이고 사도는 누군가를 율법에 나오는 규례를 잘 지키게 해서 거룩한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보다 먼저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속됨과 거룩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일은 고넬료가 복음을 듣게 되는 것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고넬료가 비록 경건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율법의 시각에서는 여전히 부정한 이방인입니다. 율법 안에 있는 자가 거룩하고 불법 밖에 있는 자는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로 인해서 율법적 의미의 거룩과 더러움의 의미는 무너지고 십자가를 기준으로 한 거룩과 더러움의 새로운 세계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공로가 되는 십자가의 세계 안에 있는 자가 거룩하고 십자가 밖에 있는 자, 즉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지 않는 세계가 더러운 세계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고넬료로 하여금 베드로를 만나게 하시는 것은 이러한 십자가의 세계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경건한 삶이 전부가 아니라 십자가를 아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같은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고넬료에게로 인도받은 것입니다.


네 귀를 매었다는 것이나 환상이 세 번 반복된 것의 의미는 저로서도 확실하게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깨닫게 된 십자가의 세계가 땅 위 모든 사방으로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에서 네 귀를 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환상이 세 번 반복된 것도 강조성을 띤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세 번 반복되었다면 베드로 역시 세 번 거부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완고함을 드러내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생각한다면 환상의 세 번 반복은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이 구별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써 자칫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흘러갈 위험이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3. 베드로는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십자가의 세계입니다. 십자가의 세계에는 율법에 의한 거룩과 더러움의 구분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를 믿는 거룩의 세계와 믿지 않은 더러움의 세계가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가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으니 이방인을 향한 설교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설교와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경건한 삶도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경건한 삶도 구원의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구원의 근거는 오직 십자가일 뿐이고 십자가의 세계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의 세계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이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4. 앞에서의 제 답변을 읽으시면 고넬료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넬료의 경건한 삶을 강조하며 고넬료와 같은 경건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생각할 수도 있고,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는데도 거부하고 자기 신앙을 고집하는 인간의 완고함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오랫동안 지켜온 자기 신앙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근거로 한 거룩과 더러움의 구분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율법적 행위를 근거로 거룩과 더러움을 구분하는 습성이 있음을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만나게 하시고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통해서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번거로운 일들을 통해서 우리 신앙 또한 철저한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으로 유지되고 있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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