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8.10.27 16:37

(76강) 남자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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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설교>

성경을 읽으면 뭔가 우리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곤 합니다. 세상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도 예외는 아닙니다. 마치 바울이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는 말이 나,‘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말이 그러합니다. 이 외에도 본문의 내용은 우리의 사고로는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상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 성경이 증거 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해 말하고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따라서 만약 교회에서 세상에 통용되고 소통이 되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사도가 전하여 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이 아닌 사람으로 말미암은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자에게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이해하는 교회에 대한 시각으로는 바울의 말을 도무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에게 교회는 세상이 이해하는 교회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고 합니다. 대개의 남자는 이 말에 반박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길 것입니다.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마치 남자를 높인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자를 남자의 영광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여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말은 여자에게는 자기 영광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자의 존재 자체가 남자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8,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한 내용이 여자의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현대 사회는 여자가 남자의 소유로 취급되던 고대와 달리 남녀평등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비록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고는 해도 지금의 세상에는 통용될 수 없는 말인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바울이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바울이 살아가는 다른 세상에 대한 시각과 감각이 둔하기에 바울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교회를 번듯한 건물과 넉넉한 재정, 그리고 헌신의 열심과 친절함이 넘치는 교인과 사회봉사에 힘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인품이 있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헌금 강요를 하지 않는 목사가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그러한 교회로 만족해 할 것이고 그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다운 교회, 소위 믿음이 있는 교회로 인정하는 조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활동입니다. 인간의 활동이 부지런할수록 살아있는 교회라 하고 활동이 없거나 미미 하면 죽은 교회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교회는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을 보여주고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돌아올 공로와 영광이 없다는 것이 바울이 아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로 돌아올 공로와 영광이 없다는 것은 교회의 지체된 모든 신자에게 돌아올 공로와 영광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공로와 영광을 위해 지체와 지체가 경쟁하는 것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시각에서 현대 교회를 진단한다면 교회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소속된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말에 반발할 것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를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마치 자신이 신자가 아니라고 부인 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죄의 속성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죄의 속성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반발하게 되는 것이 바울의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영광이 남자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말이 탐탐치 않게 들리는 것도 그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7절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말이 기분 좋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는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을 향한 말에 주목한다면 남자든 여자든 존재 이유는 나의 영광에 있지 않다는 것에서 동일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1: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사람을 위한 창조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창조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남자도 여자도 자기를 위해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에 자기 존재 이유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남자든 여자든 자기 이름, 자기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합니다. 그래서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서 경쟁이 발생합니다. 세상의 구조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영광의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인보다 더 부지런한 활동을 통해서 많은 성과를 남기는 것이 영광이 되고 이름이 높아지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경쟁은 인간에게서는 필연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러한 속성에 따라 흘러간다면 그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자가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떤 의미로 여자를 남자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일까요? 바울이 이러한 내용으로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면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교회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위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따라서 남자가 바울의 말을 이용하여 여자보다 낫다고 여긴다거나 여자는 여자대로 불만의 마음을 갖는다면 결국 서로가 자기 입장에서 성경을 보는 결과 밖에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30:6-8절에 보면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여자가 결혼을 할 때는 자기 행복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 행복을 위해 남편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결심을 한다 해도 그 결심이 지속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령 남편에게 잘해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해도 그 효력은 남편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30:2절을 보면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 서원을 하였다면 반드시 이행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남편을 맞을 때 서원한 것이 있다면 지켜야 합니다. 단 남편이 여자의 서원을 허락하지 않으면 서원은 무효가 되고 여자가 서원을 지키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은 그 여자를 사하신다고 합니다. 만약 남편이 여자의 서원을 듣고 아무 말이 없었다면 여자는 자신이 한 서원에 대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여자의 서원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자가 서원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남편은 여자의 서원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여자의 서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고 여자는 그로 인해 서원을 지키지 않은 죄를 사함 받게 됩니다. 여자는 그렇게 서원 지킬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 남자의 권위와 책임 아래 보호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에게서 나와져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왜 나의 서원을 허락하지 않습니까?’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옳습니까? 만약 여자가 자신이 서원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알게 된다면 남편이 서원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할 것입니다. 남편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자의 영광은 남자라는 말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남자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본인이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성경이 말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되는 남자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고후 4:4절에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골 1:15절에서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그리스도가 남자의 머리가 되기 때문에 남자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아니면 남자는 아담의 형상으로 썩어질 육신일 뿐입니다. 남자가 이러한 내막을 안다면 머리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이기에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겠다고 나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권세로 자리합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책임지심으로 여호와로부터 사함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를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 즉 여자로 생각해 보십시오.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하나님께 나 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권세로 나를 책임지시는 그리스도께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책임지심으로 내가 산다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9-10절에서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고 말합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활동합니다. 따라서 천사들을 인한 권세 아래 있는 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다스리고 일하심을 믿는 믿음의 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표를 머리 위에 둔다는 의미로 여자가 무엇인가를 머리에 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믿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닌 자신의 일과 실천을 통하여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바울은 교회가 어떤 일과 활동을 통해서 교회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권세를 무시하는 것이며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교회를 책임지심을 멸시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 말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할 것은 우리를 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뜻에 의해 존재하고 그 뜻에 의해 살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권세로 존재합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여자가 머리에 뭔가를 쓰고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무엇인가를 머리에 쓰는 여부에 대한 바울의 말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와의 관계에 있는 모든 신자를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입니다. 즉 다 이루신 완성에 속한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따로 뜻을 세우고 그것을 이룸으로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게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무능한 나의 죄를 책임지시고 용서를 받게 하신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신랑 되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의 다 이루심 안에 있기에 자신이 이룬 것으로 경쟁하거나 자기 영광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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