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8.12.22 14:28

(84강) 몸과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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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설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거나 미래를 맡길만한 것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서 찾습니다. 인간을 육신을 가진 존재로만 생각하면 자신에게 도움 되는 것을 세상에서 찾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육신에 도움 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나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에 도움 되지도 보장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육신에 관심을 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예수와 교회를 육신에 도움 되는 것으로 변개하여 전함으로 인해서 신앙의 본질로부터는 멀어진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틀 후면 성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서 육신에 도움이 된 것이 있습니까?

 

 

현실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거나, 예수를 믿기 위해서 교회로 모이고 예배를 드린다 해도 무겁고 팍팍한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이 예수께 마음을 두기보다는 자기 육신을 위해 예수를 믿는 믿음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교회를 찾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을 설득하여 예수께 마음을 두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육신이 편해진다는 거짓된 말로 예수께 헛된 기대를 두게 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성경이 증언하는 내용을 따라가며 인간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은 그 몸을 증거 할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됨으로써 불의한 사망의 존재가 생명에 속한 거룩한 백성이 된 그 비밀을 믿고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같이 나누고, 비밀에 함께 하고, 세상이 모르는 비밀의 내용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송할 수 있는 깊은 관계로 모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 되게 하신 은혜와 사랑으로 공평해지는 관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알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12)라고 말합니다.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고 여러 지체는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몸의 관계를 교회에 적용하여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론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각자 독립된 육신과 인격으로 존재하며 자기중심적이라는 죄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관계를 경험하고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몸과 지체에 대한 바울의 말은 단지 이론과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만 머리에 담아 두고 각자 자기 신앙과 구원을 위해 교회를 다니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교회에 대한 안일한 생각이고 그로 인해 고린도 교회와 같은 문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은사 문제는 은사 받은 자신에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은사 받은 자신이 자랑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의미를 알지 못하고 육신에 치우친 모습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가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문제를 드러내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칫 우리는 교회에 있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교회다운 교회로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아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모인 교회에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헛된 기대일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교회는 세상의 종말까지 수많은 문제와 상처를 드러내고 겪으며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드러난 제도적 교회의 현실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라는 말로 교회는 하나고 한 몸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육신으로는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이방인인 헬라인을 자신과 동등한 관계로 보지 않습니다. 종과 자유인의 관계 역시 육신으로는 동등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계가 바울의 충고로 달라졌을까요? 이것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의 내용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짐작이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사람의 본성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 이상적인 기대를 하면 반드시 실망이 뒤따라오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복음도 믿음도 교회를 이상적인 관계가 실천되는 공동체로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이상적인 교회라는 것이 복음과 믿음이 목적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은 교회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목사에게는 교회가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좋은 교회가 목사의 자존심이고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좋은 교회 만들고자 하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드러날 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가 사망의 존재인 우리에게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미래의 보장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생명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부러워 할 좋은 교회를 만들었다 해도 교회가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은사가 주어졌다 해도 역시 그 은사가 생명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참된 교회라면 다양한 지체가 모이고 여러 가지 은사가 주어진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고 만족하는 것으로 하나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한 몸의 관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으로 모이고 종과 자유인으로 모인다 해도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한 성령을 받았다면 서로가 자신을 사망의 존재로 보면서 십자가 피의 은혜 안에서 인간은 무능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다만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사실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 성령을 받은 관계에서는 유대인, 헬라인, , 자유인이라는 것이 서로의 벽이 되지도 걸림돌이 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다스림 아래 있는 참된 교회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4-6)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은사, 직분, 사역은 모두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존재하고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여러 가지로 인해서 사람도 여럿으로 나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수시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은사라는 점에서는 같음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받았는지 병 고침을 받았는지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부각되는 것입니다. 은사가 우월이 되고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나 같다라고 말합니다. 한 성령을 받았다면 어떤 은사를 받거나 어떤 직분을 가졌든 그것과는 무관하게 주가 그리스도시고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같은 고백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 관계로 함께 하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15-17절을 보면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라고 말합니다.

 

 

만약 발이 나는 손이 아니기 때문에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에 속하여 몸에 종속된 존재보다는 발이라는 독립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간성입니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 내가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해도 내가 했다는 것에 매입니다. 그래서 행한 것이 있을 때는 자랑이 되지만 없거나 타인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구원에 대해 불안감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발과 손이 독립된 지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 또한 서로 독립된 지체로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립된 지체가 아니라 한 몸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교나 경쟁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좋거나 좋지 않은 신자, 열심이 있거나 없는 신자로 구분되어 평가되고 그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사실 또한 외면하는 거짓 교회일 뿐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좋은 교회는 거짓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좋은 성품이나 믿음을 요구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결국 좋지 않은 성품으로 판단되는 사람은 좋은 교회를 만드는데 쓸모없거나 방해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해도 몸은 발을 떼어 버리지 않습니다. 발이 어떤 상태에 있다 해도 몸에 속한 지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죄의 모습이나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근거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모든 불의와 죄를 무조건 용서하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는 것이지 능력이나 자질을 따져서 용서할만한 자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어떤 것으로도 인간 자체가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되는 일은 없는 것이 십자가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믿는 교회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특정한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 있든 열심이 있든 인간의 죄의 존재일 뿐이며 이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종말의 그날까지 변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을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예수가 나에게 생명이라는 그 사실 하나로 한 몸의 관계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게 되면 관심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됩니다. 자신은 무가치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선명히 깨닫게 되면서 자연히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전부라는 것만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게 교회는 동일한 같은 고백을 하는 관계로 드러나는 것이고 이것을 한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을 보고 십일조를 하는 것 등을 신앙 좋은 것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말로 교회는 열심히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로 구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교회가 서로를 그렇게 구분하는 것의 심각성도 모를 것입니다.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팽배하기 때문에 한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구분하고 판단합니다. 그런 우리를 잘라버리지 않고 붙드시는 은혜가 우리의 죄인 됨을 보게 하면서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자랑하는 신자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 됨으로 함께 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관심은 시작부터 마지막 까지 그리스도로만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받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한다면 그것은 한 성령을 받은 모습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이 은사를 주셨는데 정작 은사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가치를 돋보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죄를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그 죄가 죄로 보이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누리는 것이고 참된 은사의 세계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자는 변하지 않는 인간성과 죄 가운데서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에 의해 다스려지고 인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로 부름 받은 것 자체가 은혜이며 감당할 수 없는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함께 하는 모든 지체가 이러한 관계에 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잘 것 없고 무가치한 내가 은혜를 입은 자로 생명으로 인도된다면 여러분이 함께 하는 지체도 한 몸의 관계에서 동일한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 대해서든 너는 왜 그래’‘왜 그것밖에 못해’‘사람이 못됐어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임을 아는 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영원한 미래가 보장된 놀라운 복의 사람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이 은혜 안에서 만나고 전하며 교제하는 한 몸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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