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3 16:53

(97강) 교회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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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전 14:33-40

고전 14:33-40http://onlycross.net/videos/co1/co1-143340.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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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3.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설교>

바울은 교회가 지켜야 할 기독교 교리나 실천 원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서신에서 어느 한 구절에만 집착하여 교회가 지켜야 할 교리나 원칙으로 정한다면 그것은 바울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결과가 된다는 점에 신중한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 역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35절을 보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의 말을 복음이라고 했을 때 여자들이 잠잠하라는 바울의 말을 기쁜 소식, 즉 복음으로 받아들일까요? 바울 당시 교대사회는 틀에 박힌 가부장적인 문화였기 때문에 교회에서 잠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만이 내포된 상태에서 억지로 잠잠할 뿐이지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바울의 말에 불만을 가진다면 그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에게 불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왜 여자만 교회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잠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고 자기 입장이 앞서게 됨으로써 그는 이미 복음을 복음으로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다는 말이 불만으로 다가온다면 고전 11장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등의 바울의 말에 대해서는 환영하고 기쁨으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 입장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에 대해 흡족한 마음을 가지는 것일 뿐입니다. 당연히 복음을 듣고도 듣지 못하는 결과만 초래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할 때 오해하는 것은 복음을 듣는 나를 기쁘게 해주는 소식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런 의미에서 기쁨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소식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세상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는 전혀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우리가 기대하는 기쁨 아닌 기쁨을 무너뜨리고 대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에 눈을 뜨게 하는 것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게 될까요? 바로 자신이 기대하는 것들은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만이 참된 기쁨이 됨을 알게 된 신자만이 세상에서의 자기 입장이 아닌 죽음이라는 인간의 본질에서 복음을 복음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복음으로 듣는 귀가 있다면 바울의 말은 남자와 여자 구분 없이 기쁜 소식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는 여자에 대한 말이구나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고, 여자는왜 여자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는가?’라는 불만을 가질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잠잠하라는 바울의 말에 담긴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교회에 속한 여자가 지켜야 할 법도와 원칙을 가르치고 세우기 위해 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확실히 해야 합니다.

 

 

지금의 기독교에서도 여자는 잠잠하라는 말을 근거로 해서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복음을 복음으로 듣지 못하고 자기 입장과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관심에는 십자가만 있을 뿐이지 여자가 교회에서 목사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은사 문제에 대한 마지막 결론에 해당됩니다. 은사로 발생했던 교회 문제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로 시작하여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39,40)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여자에게 잠잠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35절에서 만일 무엇을 배우려 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머리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교회에 말하지 말고 남편에게 물으라는 것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심지어 여자가 남편에게 묻지 않고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까지 말합니다.

 

 

여자에게 머리는 남자입니다. 따라서 여자다움은 머리되는 남편을 섬기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을 섬기는 것이 여자에게는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편에게 묻지 않고 교회에서 묻고 말을 하는 것은 머리되는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고 질서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교회의 현실로 보았던 것입니다.

 

 

1:18절에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만물의 으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인정되거나 인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자신이 인정받고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여자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잠잠하라는 말을 통해서 여자가 아닌 교회의 현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에게 묻고 남편의 말을 들으면 되는 것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그래서내가 목사니까 내 말에 순종해야 한다거나목사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말일 뿐입니다. 목사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지 그 때문에 예수님의 자리인 머리가 목사의 자리인 것처럼 행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를 말하되 예수님의 죽음 밖에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관람자의 입장에서 예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중심이 되고자 하는 본성에만 충실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것처럼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에 복종한다면 인간은 죽음의 존재로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무가치한 자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알게 하는 율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에게 놀아나는 인간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믿음 좋은 나라는 자기 존재를 확고하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머리의 자리에서 밀쳐내고 자신이 차지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이러한 악한 인간성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장이라는 것도 반드시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한 인간성이 난무하는 현장 속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잠하라는 바울의 말은 실제로 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 받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섬기를 교회를 향한 말이 되는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주지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잠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우리가 잠잠하지 못하고 항상 자기 존재가 부각되고 자랑되며 인정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부끄러운 인간의 종교성의 산물일 뿐인 것으로 그 정체가 발각됩니다. 이것이 복음이 복음으로 다가왔을 때 있게 되는 효능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으로든 자신을 믿음이 있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화된 존재로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고자 하는 사탄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음인데 이러한 말씀을 과연 누가 기쁜 소식으로 받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의해서 자기 존재 가치에 금이 가고 무너지는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택한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자는 그 은혜 때문에 기쁨이 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고 이 능력에 순종하며 인간의 모든 공로와 힘은 부인되어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바울은 36-38절에서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는 글이 주의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면 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일까요? 말을 바꾸어서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할 수 있을까요? 만약 바울의 말을 근거로 해서 교회에 여자는 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여자는 불만을 가질 것입니다. 여자라는 자기 존재가 무시당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잠잠할 수 없는 존재고 따라서 주의 명령을 지킬 수 없다는 결론이 됩니다.

 

 

주의 명령은 우리가 지킬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존재를 보게 됩니다. 그것이 주의 명령을 통해서 자기에 대해 바르게 알게 되는 내막입니다. 이것이 또한 말씀을 주시는 이유이기에 말씀을 받은 자는 말씀에 의해서 저주에 속한 인간의 현실을 낱낱이 선포해야 합니다. 선지자, 신령한 자는 바로 이러한 역할에 있는 신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만이 자랑과 영광으로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이 있는 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모든 것은 부인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복음이 인간이 자기 자랑과 영광으로 여기는 모든 것을 짓밟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자존심이 있습니다. 자신이 자랑과 영광된 자로 드러나는 것을 즐깁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면 반드시 인간의 자존심과 충돌이 있게 됩니다. 그 충돌은 여러분 스스로 얼마든지 느낄 것입니다. 그러한 충돌을 느끼면서 여러분이 복음을 원하거나 듣고자 하는 사람이 아님을 실감하시라는 것입니다.

 

 

복음과 자존심이 충돌했을 때 복음을 밀쳐내고 떠나는 사람이 있고 자기에게서 드러나는 자존심의 실체를 보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믿음의 현실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신자이며 이러한 신자는 인간이 자기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허구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질서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에 의해서 세워지지도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주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증거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로 함께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은사가 풍성했던 고린도 교회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셔서 방언하게 하고 예언 하게 하는 것을 자신이 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는 그 현실 안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한다 해도 이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착한 일을 통해서 훌륭한 신자로 인정된다 해도 이 현실은 불변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은 지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예수를 믿는다면 그 믿음은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 믿음 없는 자로 보게 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주께서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복음을 말한다 해도 자신은 복음에 무지한 자라는 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래야 복음을 알게 되는 것도, 말하게 되는 것도,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렇게 자신은 지워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그려지는 그림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잠잠하라는 말에 담겨 있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씀을 보게 되면 복음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9:19절에서 바울은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자신이 섬겨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자로 여긴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그렇게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주가 일하시고 주가 이루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높고 낮음이 아닌 섬김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십자가 정신이며 이 정신으로 서로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며 함께 하는 것이 십자가로 구축되는 교회의 질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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