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5 18:35

(4강) 넘치는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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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전 1:5

고후 1:5http://onlycross.net/videos/co2/co2-010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설교>

신자를 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신기한 현상이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저주받을 자를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사랑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관심은 육신으로 향해 있고 육신의 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저울질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모든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하나님이 사랑이라 해도 이미 육신이 삶의 의미와 전부로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 밖의 문제일 뿐입니다.

 

 

영적 존재인 신자는 자신의 인생길에 예수님이 없으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조건과 형편을 누린다 해도 저주로 끝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인생길을 가면서 자기 앞에 세상이 아니라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생길이 아니면 결국 실패로 판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배척하면서 오로지 육신의 복에 매달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께만 모든 가치를 두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가치를 알지 못한 세상이야 말로 예수님을 믿기에 가장 힘든 조건이고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복을 세상과 동일하게 육신의 문제로 생각합니다.‘복 받았다고 하면 부자 되고, 사업 성공하고, 승진하고, 좋은 학교 들어가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사고방식으로 충만한 사람들 속에서 십자가의 복을 아는 자로 사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신자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5)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 스스로 고난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런 그를 고난이 넘치는 길로 가게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바울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1:24절을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삶의 이유와 목적, 방향 등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짜증이 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해도 어느 정도이지 인생 전부가 그리스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심하지 않는가?’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나의 삶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세상은 인생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흔들거나 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세상에 나타낼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는 것은 내 인생은 허락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하나님이 살게 한 대로 살면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길로 가도록 결정된 운명에 붙들린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신자의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것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도 섞어서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생 전부를 하나님의 뜻대로 채우시면서 그리스도를 나타낼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고, 이 고난이 넘치는 것이 신자의 인생입니다.

 

 

신자의 육체에 채워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길로 가셨던 그 고난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신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주를 믿는 것은 주께로부터 자기 인생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가 앞서 가신 그 길만이 참된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소홀히 한다면 믿음은 헛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다는 말에서나는 지금 고난이 넘치는가 넘치지 않는가?’의 여부를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자 된 사람이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 붙들린 신자에게 자기 인생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택함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인생으로 이미 확정되었고 그 길로 인도되고 있음을 안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는 길로 인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항상 자기 인생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한 채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인생으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해도 주어진 인생에 슬퍼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에 미련을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주어진 일로 슬퍼하고 낙심하면서 그것이 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인생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 진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증거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능력에 붙들린 자가 아니면 인생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로 슬퍼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을 자기 인생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만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항상 날 위해 살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망해야 할 자일뿐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의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셨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신자는 십자가의 고난이 그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가신 길만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러한 신자로 세상에 세우시기 위해 주의 일을 우리의 삶에서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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