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9 18:12

(8강) 서로에게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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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1:12-14

고후 1:12-14http://onlycross.net/videos/co2/co2-011214.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2.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설교>

신자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사람이지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교회를 바라본다면 그는 신자가 아닌 기독교인으로 지칭하는 것이 맞습니다. 종교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기독교인으로 사는지 아니면 신자로 사는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때문에 교회라는 관계로 함께 할 때는 신자로 함께 하는지 아니면 단지 기독교인으로 함께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관계라는 것에 대해 외면하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신자가 아닌 기독교인으로 함께 하는 종교 단체의 속성만 드러내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조차 간파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관계의 문제와 상관없이 우리 스스로 신자, 교회로 인정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교회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보다 교회를 더 중요시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교회라는 말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자기 현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고 하고 그리스도가 전부라고도 말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말이명분 세우기일 뿐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교회라는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단지 하나의 명분으로 이용하는 자기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교회는 양손에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떡을 쥐고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얄팍한 인간의 심보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명분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이고, 교회는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당연히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교로 흘러간 교회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무관심하고 단지 보이는 것을 교회로 인식하는 수준에 있습니다. 교회를 모르기 때문에 신자의 관계도 당연히 알 수 없는 것이고 그로 인해 세상 인간의 관계와 만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고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된다는 것은 서로에게 자랑이 되는 관계에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주 예수의 날에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자랑이 되는 관계로 함께 하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들었던 바와 같이 고린도 교회의 중대한 문제 중의 하나가 분파입니다. 분파는 단지 분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 분파의 우월성을 나타내고자 함으로써 필히 갈등과 충돌과 비난이 있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에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비난하는 세력이 존재했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나 현상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이 함께 하게 되면 어김없이 돌출됩니다. 이것은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한 인간 속성이 중심에 자리함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서로 비난하지 맙시다’‘서로 사랑합시다는 말은 교훈으로 끝날 뿐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서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더 우월한 존재로 부각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에 바울은 서로에게 자랑이 되는 관계에 있는 교회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관계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해결은 없습니다. 부패한 속성이 잠복한 상태에서 그 본성을 수시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다만 바울은 어떤 문제든 그것을 통해서 서로가 함께 그리스도로 나아갈 것을 말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교회 문제의 해결의 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대할 때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12).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회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대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은 창세전에 예정과 택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악하고 불의한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행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거룩이고 진실함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질에 따라 하나님의 행함이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항상 사람의 조건을 봅니다. 그리고 조건에 따라 인간을 대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육체의 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의 지혜로 행하는 것이 세상의 인간관계입니다. 교회도 어김없이 이러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육체의 지혜로 행하는 것이 인간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도가 육체의 지혜로 행하였다면 자신의 사도직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바울도 비난하면서 멀리하고 대신 바울파에 속한 사람들을 가까이 했을 것입니다. 소위 내 편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고 그것이 바울의 양심이며 자랑이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 말에서 구원 받은 신자 됨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가 육체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로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인간의 조건이 아닌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구원이 되었음을 아는 것이 신자라면 구원의 세계로 만나고 함께 하는 교회는 서로에게서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만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가 문제를 해결하고 소위 좋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도 바울은 교회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바울의 자랑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날, 즉 예수님이 오신 마지막 날에 영원한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서로에게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교회가 끝까지 추구하고 소망할 것은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에서 교회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라는 보이는 것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욕망이라는 속성임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 건전한 교회를 만들고 그것을 도구로 삼아 사람을 모으고자 하는 것도 욕망임을 모릅니다.

 

 

그렇게 사람은 자기 욕망을 위해 조건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분명 서로에게 자랑이 되는 구원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거나 기대하지 마시고 성령이 간섭하시고 세우시는 교회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함께 했을 때 서로에게서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아신다면 그 은혜의 방식으로만 서로에게 행하십시오. 그러면 주 예수의 날에 서로가 자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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