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5 16:19

(22강) 보배와 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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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4:6-7

고후 4:6-7http://onlycross.net/videos/co2/co2-04060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설교>

성경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복지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애당초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성경이 아니라는 말이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인간을 도우시고 인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고수하면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난해 구절또는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모두 알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덮어 버립니다. 또한 문자적이고 자구적인 해석방법을 통하여 인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내용으로 왜곡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바른 해석으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총체적 위기라는 현실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위기를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믿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고집합니다. 이러한 현실이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1)는 말씀처럼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을 죄와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9:2)라고 물은 것입니다. 맹인 된 것을 죄지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맹인으로 난 것이 죄 때문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사상입니다. 사실 굳이 불교 사상이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종교성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인간의 종교성으로 현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은혜, 사랑, 신앙, 행함, 보응, 복 등의 종교세계에서 동일한 생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맹인 된 것을 죄가 없는 것으로 말합니다. 인간에게 초점을 둔 신앙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실제 맹인이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가리켜 죄가 없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맹인은 자신이 문제없는 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합니다. 이것이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현장입니다.

 

 

교회가말씀이 역사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말씀이 역사하게 되면 마음이 뜨거워지게 되고 뜨거운 마음으로 주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게 된다는 말을 주로 하게 됩니다. 말씀의 역사를 문제 있던 신앙인도 문제없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초점을 둔 왜곡된 해석입니다.

 

 

바울은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는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게 되면 관심은 자연히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는 것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마음에 비춰지게 되면 그 빛을 받은 우리는 빛이 되어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라는 말에 초점을 둔다면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시는 것은 우리 마음이 곧 어둠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어둠의 상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를 모르고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4절에서 바울은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에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여 복음의 가치, 복음의 존귀함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사탄에 의해 장악된 마음은 복음보다 자신에게 가치를 두고, 자신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상대하여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 본래의 속성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 가치를 위해 신을 찾는 인간의 어둠입니다. 그런데 자기 가치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을 신앙의 정당한 이유와 목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빛을 빛으로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은 신자를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을 도구화하여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 자신에게로 관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신자다움, 목사다움이라는 기준을 세워서 비교하고 평가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탄에 의해서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한 채 하나님을 찾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의 실상입니다. 어둠이면서도 어둠인 것을 알지 못하고 빛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는 말씀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맹인이란 어둠의 세계에 있는 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맹인에게 복음의 광채가 비친다면 그것은 눈을 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실제로 맹인이 눈을 뜨고 병자의 병이 낫는 놀라운 기적 같은 체험일까요? 그러한 체험이 어둠에 있는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의 광채로 인해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어둠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둠을 어둠 되게 하는 것이고 맹인을 맹인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맹인 된 것을 두고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 복음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상은 어둠이고 맹인인데도 빛이라고 하고 본다고 고집합니다. 이것이 사탄에게 장악된 인간의 본심이라는 것을 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광채에 의해 맹인이 맹인으로 드러나고 맹인 된 자로 주께 나오는 것이 의로움이 되어 죄가 없다는 선언의 혜택 아래 있게 됨을 아는 것이 신앙세계입니다.

 

 

이러한 신앙세계에서 인간은 소위 말하는 신앙 좋은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신자답게 보이려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이미예수 그리스도라는 답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답이고 그 답을 알기 때문에 내가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다른 답을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말로 자신의 사도다움에 대해 의심하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답을 하는 것입니다.

 

 

7절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말에서도 바울의 의도는 선명하고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바울은 보배와 질그릇을 구별합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해서 질그릇이 보배와 같은 귀하고 가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질그릇을 위해 보배가 주어진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은 보배가 아닌 보배를 가진 질그릇으로 향합니다. 그래서질그릇같이 가치 없고 허무한 우리 인생을 가치 있는 영광스런 보배로 만들어주는 것이 그리스도다라는 말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더 이상 질그릇이 아닌 보배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으면 우리 인생은 깨지기 쉽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질그릇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이런 말이 맞을까요? 듣기 좋은 말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춰진 마음이라면 관심은 항상 질그릇이 아닌 보배로만 향해야 합니다.

 

 

질그릇은 질그릇일 뿐입니다. 보배가 질그릇에 담겨 있다고 해서 보배의 가치가 손실되는 것은 없습니다. 설령 질그릇이 깨어진다 해도 보배는 변함없이 보배 그대로입니다. 때문에 질그릇이 가치 있게 되어야 보배의 가치가 더 향상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배의 보배 됨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에 대한 인생 목표가 없습니다.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5)는 말처럼 예수의 주 되심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존재 이유가 되고 인생의 방향과 소원으로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되었다면 사도의 인생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형통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믿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도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게 하시고 답답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르신 사도에 대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겨쌈을 당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주어진 현실로 인해 낙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낙심하지 않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낙심하지 않게 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부자 되는 것으로 복 받았음을 보여주거나 형통한 삶을 사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을 사탄에게 장악 되고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한 어둠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작금의 교회에 중요한 문제는 바울이 증거 하는 복음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큰 능력이 아니면 안되는 일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자신이 어둠인 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게 되는 것으로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두신 하나님의 취지는 질그릇을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신자 됨이 자신의 능력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증거 하는 복음의 세계임을 생각한다면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기도와 헌신과 열심으로 능력을 나타내고 신자 됨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분명 복음에서 어긋난 행태로 규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우리 마음에 비춰집니다. 이 빛에 의해서 신자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게 되고 어둠의 존재에게 빛이 되어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질그릇인 자신에게 담긴 보배를 증거 하는 것을 자기의 직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보배의 존귀함을 증거 하는 일에 초점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신자 됨의 조건, 목사 됨의 조건은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행동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믿음 좋은 신자, 목사로 인정받고 칭송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자 됨으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의 능력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불가능성에서 드러나고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을 생각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교회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에 의해 되어졌음을 놓치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배이신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누구의 이름도 부인되어야 하는 현장으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인간의 온갖 더러운 욕망이 덧칠 되고 그 욕망을 위해 예수를 부르는 악행의 집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에게 장악되어 사탄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어둠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택하여 부르시고 거룩한 신자 되게 하신 목적은 구원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도구로 사용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알아주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 보배를 가졌다는 것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믿음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인간으로는 안되는 믿음의 자리에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열심에 의해서 예수의 주 되신 것을 믿는 믿음이 나타날 뿐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할 믿음의 현실이며 답입니다.

 

 

질그릇은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보배가 빛이 나면 되는 것이지 질그릇이 빛이 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배가 담긴 질그릇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서 바울의 사도 됨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잘못됨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질그릇은 그 가치를 따진다면 보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귀한 보배를 질그릇 같은 하찮은 것에 담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악하고 더러운 우리에게 보배를 담으신 것입니다. 세상이 보배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누가 뭐래도 신자에게는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배로 인한 기쁨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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