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5.27 16:18

(4강) 주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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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설교>

신자는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과 상관없이 거룩해진 성도로 존재함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자신의 행함과 실천의 여부를 따지며 신앙을 저울질 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죄가 용서 되고 거룩함을 입은 것이 예수 안에 있는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무엇보다 예수 안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실천의 여부로 자신의 신앙을 저울질 하면서 타인까지 비판하는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안은 ‘완전한 세계’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손으로 수리해야 하거나 보충해야 하는 부분이 없는 상태의 세계가 예수 안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로 말미암아 완전한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투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천국은 완전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이 흠없는 완전하고 거룩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메우고 완전한 자가 되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런 방식으로 가능한 천국이라면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헛된 수고로 전락될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이 말하는 천국은 오직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그 말은 십자가 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신자는 완전한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부족을 채우고 보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의 세계로 부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과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예수 안의 세계가 지금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단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예수 안에서 사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말과 어긋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곧 구원 받은 자를 뜻합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문제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흔들림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감사에는 하나님이 고린도 교회를 은사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것과, 그들을 불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것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감사의 내용을 보면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만 본다면 고린도 교회는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복을 주신다는 기독교인의 상식에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도무지 교회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마치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는 듯한 바울의 말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10절부터는 교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책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신앙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 같은 1-9절까지의 내용을 바울이 어떤 의미로 말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 선언합니다. 교회가 어떤 문제가 있든 하나님에 의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인데 왜 그런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까?’라는 의문은 인간의 존재성과 ‘예수 안에서’라는 말이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 안은 예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한 은혜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서는 정죄가 없습니다. 정죄가 없다는 것은 죄가 있으나 그 죄에 대해 심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이 이미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에게는 ‘정죄가 없다’는 효력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 정죄는 없으나 죄가 없는 인간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으나 죄 있는 존재이며 죄가 있으나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 한편으로는 예수 안에 있으나 여전히 죄 있는 자신을 보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 다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역시 죄에 대한 안일한 생각으로 흘러갈 위험이 농후합니다.

 

 

죄가 보일 때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생각과 말로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해한다면 죄에 대한 심각성은 사라지고 ‘죄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의식에 붙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 둔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말하기 전에 무엇 때문에 1-9절의 말을 하는 것일까요? 고린도 교회가 문제만 보면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될 것임을 가르치기 위함일까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구원에 초점을 둔 말일 뿐입니다. 즉 복음을 말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롬 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죄 없는 존재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사탄을 제거한다면 세상은 죄 없는 곳이 됩니다. 유혹도 없게 됩니다. 죄의 유혹이 없는 상태라면 신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 면 세상이 곧 천국이 될 것이고 예수님이 인간에 의해 죽으시는 일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든지 가능한 그 같은 방식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탄이 존재하고, 죄가 있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백성이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보시면서 예수를 보내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방식으로 죄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으로 죄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값, 즉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죄로 인한 정죄가 없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며 번거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원을 중점으로 이해했을 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으로 인해 감사하는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은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자들이 함께 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롬 5:10-11절을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와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우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이 답이고 목적이라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일은 종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 받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말하고자 하는 복음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말에는 하나님이 고린도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신 뜻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주와 함께 교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와 함께 교제하는 것은 개인적 교제가 아니라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에서 함께하는 교제를 뜻합니다.

 

 

이것을 10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말로 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든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된 것도, 거룩한 성도가 된 것도,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한 것도,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것도,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되는 모든 것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어진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 모든 것을 받아 누리게 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는 화목하게 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관계로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고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며 이 일을 위해서 교회로 부름 받았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신자는 오로지 예수 안에 있음으로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구든 예수 안에 있는 그가 견고한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신앙의 견고함을 위해서 필요한 다른 조건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를 받았든 은사에 따라 신앙의 견고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신자는 예수 안에서 견고한 자라는 것이 바울의 말입니다.

 

 

때문에 기도, 주일 성수, 봉사 등의 행동을 저울질하며 견고함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견고한 신앙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견고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러한 말들은 ‘예수 안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그러면 나는 신자로서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신자라는 위치에서 신앙적 행동이 있어야 신자다운 것이고 그것으로 믿음이 확인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다운 신자라는 자기 가치를 포기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생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신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을 구제, 봉사, 전도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지만 ‘미워하지 말라’‘복수하지 말라’‘판단하지 말라’‘경쟁하지 말라’등등의 요구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라며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자로서 살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룩한 성도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한 자로 굳게 설 관계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관계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는 교회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든, 어떤 은사를 받았든 그것과 무관하게 모두가 견고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와 더불어 교제하는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은 견고할 수 없는 자를 끝까지 견고하게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신자가 주와 더불어 교제하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주와 더불어 교제한다고 해서 마음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편안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가 우리에게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게 하시면서 피로써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주만 바라보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다스림 받는 신자로 함께 하도록 하심으로 같은 말을 하게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한 교회로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것이 각기 다르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기에 차별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기 위해 주와 함께 하게 하시고, 내가 아닌 주를 보게 하심으로‘주가 살게 합니다’는 같은 말을 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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