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7.08 15:57

(10강) 증거를 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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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설교>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많이 언급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지혜’입니다. ‘지혜’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는 잠언서에 신약성경에서는 고린도전서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유독 지혜라는 말을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1장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고린도라는 지역과 연관이 있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도시입니다. 그리스 문화의 특징은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을 존중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문화가 오늘날 서구 문화의 바탕이 될 만큼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 중심이고 합리적인 정신을 존중하는 문화의 영향 아래 있었던 고린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해도 그리스 문화의 특색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즉 그리스 문화의 사상 속에서 바울의 복음을 자기들 방식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을 높이고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자연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높이고 존중함으로 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한 분파가 조성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 1:19-20)라는 말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말이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님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말에 설득되어 스스로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작정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실 때는 세상이 믿을 수 없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여 믿게 하시는 방식으로 부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은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곧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 것이며 세상의 지혜는 인간의 말재주일 뿐 진리의 길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구원의 능력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 아무리 지혜로운 말을 한다 해도 타인을 구원 받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굳이 자신이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음을 언급하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 고린도 교회는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증거, 즉 복음을 사람의 말과 지혜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누가 더 말을 잘하는가?’로 비교하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을 추종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전하는 것을 인간의 앎에 의한 말재주로 인식한다면 자연스레 말재주가 좋은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으로 추앙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사람이 중심이 된 분파로 이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4,5절)는 말로 복음이 인간의 말재주에 의해 증거 되는 것도 전해지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언급합니다.

 

 

1:17절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바울의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과연 고린도 교회가 무엇을 알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까?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이 인간의 말재주로 전해지거나,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십자가로 말미암아 증거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의 말재주에 담겨서 전해지는 세상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말재주로 복음을 효과 있게 전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헛된 일임을 설명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을 언급하는 바울의 의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22절에서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말합니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표적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이고 지혜는 합리적인 논리고 이치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직접 체험하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했던 사람들이고 헬라인은 합리적인 논리와 이성을 통해서 신을 밝혀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기적을 경험하고 신에 대해 생각하면서 알아가고자 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었다는 것인데 사도 바울이 과연 고린도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을까요? 이 말은 바울이 실제로 고린도 사람들을 무서워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고린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 말재주에 비해서 자신의 지혜나 말재주는 아무것도 아님을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 자신에 비해서 고린도 사람들이 지혜가 있고 설득력 있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복음은 인간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오심과 능력에 의해 전해지는 것임을 바울은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합니다. 바울도 말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날마다 회당에 나가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못하는 것보다는 조리 있게 잘하는 것이 상대방이 복음을 알아듣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을 믿는다 하면서도 말 잘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 즉 전도에 도움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를 못합니다. 어쨌든 전도를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해야 한다면 이왕이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치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바울이 설교를 매우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가서 복음을 가르치는 곳곳마다 믿는 자가 있게 되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생각할 수 있고 사도니까 당연히 설교를 잘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설교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이것은 아주 주관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귀에는 설교를 아주 잘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나에게는 맛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맛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각자 입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설교를 듣는 취향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설교라고 해서 설교를 잘 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설교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으로 구별될 수 없습니다. 설교를 못한다면 못해도 설교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설교냐 설교가 아니냐’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목사가 강단에서 성경 본문을 읽고 말하기 때문에 설교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했을 경우에만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 설교는 상당부분이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말에 치우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에게 ‘설교 잘한다’는 인정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와 같은 의미 없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사회생활로 인해 상하고 무거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이 목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심리학과 상담학에 지나지 않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중심에 둔 인간의 지혜고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말과 지혜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면 다른 것은 몰라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복음 외에 사회적인 여러 가지의 지식을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안다고 해서 회사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지식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말이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사건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십자가 사건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 사건이 계시가 되어 하나님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말로 복음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만 전해지는 복음은 그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있으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게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자신이 곧 죽은 자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소망을 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것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도 성령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여 믿고자 결심한 결과로 생각할 위험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5절)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가 사람의 말과 지혜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 바울의 마음입니다.

 

 

바울의 말 대로 전도는 인간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담고 있는 복음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으며 이치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이 자기 구원에 대해 생각하고 구상하고 계획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초월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인간의 이성과 머리로는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담고 있는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인간의 지혜와는 무관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처음부터 인간의 지혜와 말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알고 말을 잘해야 전도에 효과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재주와 기술을 과시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이러한 생각에 붙들린 사람이 예수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한들 그것은 오히려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의 말이나 지혜가 전도에 효과가 있고 능력이 된다면 성령의 은사에 말을 잘하게 되는 언변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이 설득하기 위해서는 말과 함께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신기한 기적을 첨가하면 더 많이 설득 당하고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도는 그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순전히 십자가라는 사건만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설득할 수 없고 설득되지도 않을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내용을 전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는 것이 전도임을 생각해 보면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일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만 된다는 것을 절감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사람의 말과 지혜를 신뢰하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되는 일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는 것이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 됨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증거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를 한다거나 누군가에게 말하고 가르칠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맞는다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야 할 필요도 업었겠지요?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시고 예수를 아는 자로 세상에 남겨 두신 것은 바울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바울로 하여금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 사실을 증거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로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사람의 말과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되었음을 체험했고 그 사실을 증거함으로써 모든 성도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와 말로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지금도 증거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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