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017.07.22 14:53

(12강) 은밀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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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설교>

신앙은 성경에 대한 충실한 해석이 있고 그 해석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바른 믿음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 기독교의 신앙을 검토해 본다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성경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기본적 인식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 가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말씀이 증거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을 통한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는 말씀과 상관없이 단지‘잘 믿으면 된다’는 맹목적 형태의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충실한 성경 해석이 결여된 설교가 넘침으로 해서 내용이 없거나 크게 왜곡된 신앙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잘 믿는 것 또한 성경을 많이 읽거나 기도를 많이 하고 십일조를 성실하게 하는 것 등의 행함과 실천으로만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잘 실천하여 자신이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 신자가 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편지의 서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껏 반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잘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로 일컫는 것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문제없는 좋은 교회 되는 것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자기 믿음, 자기 의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성도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신 뜻과 의도를 모르기에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에 속한 교회이며 반대로 자기의 것을 내어 놓고자 한다면 그것은 육에 속해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교회됨은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자기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자기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고 그것을 자랑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세상과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6,7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온전한 자란 고린도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의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볼 때 고린도 교회는 온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라도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들으면 온전하기는커녕 교회답지 못하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안에 세워져 있는 윤리와 도덕적 기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외적인 문제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로 바라봅니다. 때문에 온전한 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 5:48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온전하시다면 하나님의 아들 또한 온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온전한가 온전하지 않는가?’로 하나님의 자식인가 아닌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만약 누구든지 온전하지 않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믿음이 출중하다 해도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그것으로 온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이 자기의 의와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없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고린도 교회를 온전한 자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와 오늘날 신자를 온전한 자라 칭할 수 있는 이유이고 근거입니다. 즉 신자의 온전함은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추종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혜를 세상의 지혜도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무엇이고 하나님의 지혜는 또 무엇일까요?

 

 

바울이 말하는 지혜가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라면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의 지혜를 말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의 지혜를 말한다면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육에 속한 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때문에 바울이 말하는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다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세상에서 잘 되는 방법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고 잘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와 방향으로 삼고 있기에 세상에서 잘 되는 방법이야 말로 최고의 지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통치자들의 지혜 또한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으로 국가를 다스리며 부강을 이루는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통치자는 백성의 행복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고 백성이 행복을 느낄수록 통치자는 인정을 받고 인기가 상승하기 때문에 백성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정책과 이념이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지혜는 ‘자기 구원’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이 곧 자기 구원이고 따라서 행복하게 될 수 있고 행복을 이뤄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에 분파가 있었던 것도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었고 자기 행복을 추구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세상 지혜를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세상 지혜의 중심에 사람이 있고 사람의 행복이 있다면 하나님의 지혜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행복이나 영광이 없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의 지혜를 미련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습니다. 그 지혜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1:23,24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는 바울의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구원을 위해서 자기 방법을 들고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다면 미련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거리끼는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 조상 대대로 구원의 지혜로 여겨온 율법으로 인한 자기 의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가 가신 길로 가야 하는 것이 미련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길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이 추구하는 영광과 자기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세상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은밀한 가운데 있는 감추어져 있던 것으로 말합니다. 이 세대의 통치자들 한 사람도 알지 못한 지혜였던 것이고, 그 무지가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만세 전부터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감추어진 비밀, 은밀한 비밀이라고도 말하는 것이고 비밀이기에 세상이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왜 감추어 놓으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 알게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 지혜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에 의해 간파되거나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방식으로만 지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누구든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말 할 때는 인간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은밀하게 감춰 놓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됨으로 해서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있게 하시고 그 고백으로 영광 받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십자가와 멀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십자가와 가깝게 있을까요? 예배당 지붕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예배당의 강단 뒤에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십자가와 가장 가까운 것이 교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십자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결국 현대 교회에게 십자가는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이나 길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기독교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린 서글픈 현실의 증거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 3:35-36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영생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구원의 원칙이고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아들을 믿지 않은 모든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뿐이고 하나님의 지혜인 아들을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오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만 있을 뿐이며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구원은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졌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로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성도가 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자가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가 된 그 비밀을 전파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7절 후반절에서 말하는 우리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의 존재 이유, 존재 가치, 존재 의미는 오직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아멘 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유로 부름 받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지혜로는 도무지 ‘아멘’할 수 없는 일에 아멘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복음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죄인의 괴수인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 알았기에 고린도 교회 역시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이며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좋은 교회가 되라’는 당연하고도 흔한 충고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발적 의지로 신자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한 부르심으로 신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용서된 된 능력 안에 있고 그 모든 비밀을 하나님에 의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살았던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도 나의 정욕과 자랑을 위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나를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그 마지막이 멸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멸망에서 건지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알게 됨으로써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에 감격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길입니다. 세상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얻었고 이루었다 해도 그것이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자로 부름 받은 우리는 자신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생명이며 그리스도 안에는 세상에서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세상은 용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는 용서가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증거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인간에게 십자가는 그의 운명이고 전부입니다. 이렇게 멸망의 존재일 뿐인 인간의 가치와 의미는 온전히 십자가로 인해서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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