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9 19:34

(64강) 사탄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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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11:13-15

고후 11:13-15http://onlycross.net/videos/co2/co2-11131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설교>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가리켜거짓 사도’‘속이는 일꾼’‘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사탄의 일꾼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이 복음과 다른 길에 있는 자들임을 지적합니다. 물론 바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참된 사도인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고 비난하기 때문에 너희는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그들의 말과 태도에서 사도를 가장한 거짓 사도’‘복음을 가장한 거짓 복음의 실상이 나타나 있고, 그것이 교회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단호한 용어를 사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13)라는 말처럼 거짓 사도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을 한다면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가짜가 우리가 생각하는 가짜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라면 분별이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가짜가 진짜로 가장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도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14)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면 과연 우리가 천사로 가장한 사탄을 사탄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사탄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음과 복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절대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그리스도로 가장하고,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믿음과 복음을 말하는 자로 가까이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4절에서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말하는 것도 고린도 교회가 예수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성령, 복음에 대한 오해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오해의 축에 자기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앙의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과 같은 것으로 말하면서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한 것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3).

 

 

바울은 사도직의 의미를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2)라는 말과 같이 중매자의 역할에 두고 있습니다.

 

 

중매자의 역할이 교회를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중매하는 것이라면 중매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면 됩니다. 만약 중매자가 신랑을 소개하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높아지는 것에 마음을 둔다면 그는 중매자의 본분에서 벗어난 거짓 중매자일 뿐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일꾼은 사탄의 일을 하고 사탄을 위해서 일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사탄을 예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하는 일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신앙생활을 힘들게 만들어 교회와 예수를 떠나게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누군가가 교회와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사탄의 일꾼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오해입니다.

 

 

16:23절에 보면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길로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항변한 것 때문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면 안 된다는 베드로의 강경한 태도가 사탄이라는 예수님의 질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보여준 태도는 사실 제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자라면 누구나 3년을 모시고 함께 했던 스승이 고난을 받고 죽임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설령 베드로의 말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말이었다 해도 사탄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중대한 잘못이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돈을 받고 제사장과 바리새인에게 예수를 넘긴 것이 아니고 고난과 죽음이라는 고통이 예수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마음을 드러낸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적인 생각이 사탄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날 때 그의 거짓과 위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게 되는 함정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을 사탄으로 말씀하셨다면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 사탄의 일꾼이라는 용어들은 사람의 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도이고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거짓 사도는 하나님의 일을 가장한 사람의 일을 하는 자라고 하면서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합시다라는 권면으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는 기준을 교회에 둡니다. 교회 일은 하나님의 일, 생계문제와 연관된 세상일은 사람의 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베드로의 말이 교회나 생계문제와 연관되지 않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기준과 시각으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넘어지게 한다는 것은 장애물, 함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고난과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생각이 곧 장애물이고 함정이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사탄의 생각이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4장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에게는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으로 지칭한 베드로에게는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의 앞에 있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자들을 거짓된 존재로 지칭하는 이유도 그들의 사고방식이 예수님의 뒤에 있는 제자 된 모습이 아니라 장애물, 함정으로 존재하는 사탄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자신을 예수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꾼으로 자칭하는 자들의 말에 미혹되기에 십상입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사탄의 일을 분별하지 못하고 용납하는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책망이기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뒤로 물러가라는 것은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는 것이 참된 제자도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사탄의 생각은 예수님의 앞에 서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생각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예수님을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의 길에서 장애물이고 함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앞에 있다는 것은 제자로서의 자기 위치를 망각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씀은 제자 된 위치로 돌아가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데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제자 된 위치, 신자 된 위치를 찾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 즉 신자로서 있어야 할 위치에서는 자신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자들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거나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가 있다거나 말을 잘한다는 것 등으로 자신의 사도 됨을 나타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예수님 뒤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 뒤에 있다면 예수님이 보이겠지만 앞에 있다면 예수가 아닌 자신만 보이고 결국 자신의 위치에만 마음을 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이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 사탄의 일꾼으로 말하는 것은 예수 앞에서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자기 위치를 굳건히 하는 것에 힘을 쓰는 자들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사도로서 부족하다고 비난한 것도 결국 자기 위치를 굳건히 하고자 하는 자들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영광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이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차지할 자기 위치에 대한 포부도 담겨 있습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대답한 것에도 그리스도이신 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주의 나라에서의 자기 위치를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다면 자신이 꿈꾸고 있는 미래의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운명이 죽임을 당하는 길로 가지 않기를 원한 것입니다.

 

 

목사는 목회가 성공하는 것에 목표를 둡니다. 자랑할만한 예배당에 많은 수의 교인을 갖춘 교회를 꿈꾸면서 예수를 말합니다. 이러한 목사의 관심이 과연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에게로 향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신의 목회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으로만 채워지는 것을 거부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로서의 자기 확인이 아니라 목회를 성공한 목사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좋은 목사로 나타내고 싶어 하지만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거짓된 것으로 말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목사가 목회 성공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교회 규모가 확장되는 것으로 확인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사람의 일이 성취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사람의 일을 위해 예수님을 찾고, 사람의 일이 성취되도록 도우시는 예수를 말하고, 사람의 일이 성취되는 것을 은혜로 말하는 모든 것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일일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일을 바라본다면 은혜의 내용은 수시로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뒤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일과 관계없이 변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소위 목회가 실패하고 교회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나 자신은 여전히 하나님의 주관을 받으며 십자가 은혜 아래 있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뒤에 있게 되면 내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될 때도 못 한다고 생각될 때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은혜로 살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에 서서 항상 예수를 부인하며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것에 바쁘고 예수님이 가신 길보다 나의 길에 마음을 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가 용서가 되고 구원이 되는 예수님의 세계가 기쁨과 감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 예수님과 바른 관계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14,15절을 보면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일이 이상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는 것은 흔하고 일반적인 일로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가장을 우리가 막을 수 없습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옳은 것으로 믿고 따르고 좋아하는 모습으로 가장하여 접근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약속하고 제공하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에 분별의 시각이 가려져 버린 것입니다.

 

 

사탄은 하와를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로 유혹했습니다. 지금의 위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와를 유혹했던 사탄의 활동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말하고 죄인 됨을 말하면서 그것으로 자기 구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 또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보게 하고 고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있게 되면 피의 고발보다 자신의 위대한 행동과 실천으로 예수님을 더 영광되게 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신자다움을 보이겠다는 인간의 환상만 앞서게 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 뒤로 물러가게 합니다. 예수님 뒤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보게 하고 저주받은 자로서 그 피가 용서가 되어 오늘을 살게 하는 은혜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만났는데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든 받지 않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신자를 신자 되게 하는 십자가의 피라는 기준 대신 자기 일과 목표의 성공을 기준으로 세워서 은혜를 말하는 것이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탄의 활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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