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7 19:01

(71강) 사도의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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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12:11-13

고후 12:1113http://onlycross.net/videos/co2/co2-121113.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설교>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직분이나 믿음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위한 열망으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믿음의 열정도 따지고 보면 자기를 위한 열망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대의 교회를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들의 종교놀이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귀신의 놀이터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에서 예수님은 추방되고 자기의 기쁨과 존재 가치를 위해 모이는 인간들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농락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자기 일에 대한 자랑이며 자신이 이룬 것을 내세워 타인과 비교하며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자라는 거룩한 자리로 부르신 뜻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존재 가치에만 마음을 둘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반대의 길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관으로 흘러가는 인생에 나의 일은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신자의 자리로 부름을 받아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일이 없다는 것은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이 나의 뜻으로 나를 위해서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 주시는 상황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자리에서 이해해야 할 인생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바울이 사도로 부족하다고 비난했던 거짓 사도들의 등장이나, 그들을 받아들이고 용납했던 고린도 교회의 반응도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라는 의문으로 반응합니다.

 

 

사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의문 덩어리입니다. 우리가 부딪히는 상황들이 하나같이?’라는 의문을 던져주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상황이 따로 있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일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기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에 충성했던 사도가 바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을 싫어하고 사도 됨을 의심한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게 하신 사도 됨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약하게 하시고 천하게 하시고 낮추어서 사용하시는데 인간은 강해지고 높아지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시각의 사람들에게 육체에 가시를 비롯하여 약한 길로 끌어가시는 바울이 사도답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하는 사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기셨기 때문에 비밀이신 그리스도께만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고난받은 이야기나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고 하나님이 육체에 가시를 주시고 그로 인해 세 번 주께 간구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어리석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고후 11: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후 12:1)고 말한 것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억지로 하게 된 어리석은 말이지만 고린도 교회의 기준에 의하면 바울은 마땅히 참된 사도로 칭찬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물론나를 참된 사도로 인정하고 거짓 사도들을 쫓아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바울에게는 누가 참된 사도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싸우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도로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하나님의 일에만 모든 뜻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2-3)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열심으로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었던 바울로서는 어리석은 육신의 기준을 따라 거짓 사도들을 참된 사도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어리석은 말로 들릴 수 있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교회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이는 것으로 칭찬받고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종교사업이나 신자 개개인의 열심으로 믿음이 평가되고 인정받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바울처럼 지극히 큰 여러 계시를 받았다 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로 드러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사도의 존재 가치를 평가하는 교회를 향해 바울은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12)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결국 보이는 것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은 모두 보이는 것으로 증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도의 표를 이해하는 방향은 대개 일맥상통합니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참음과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이적으로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누구든 그러한 능력을 행한다면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시는 참된 사도로 인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의 표를 그렇게 해석한다면 바울은 보이는 것을 내세워 자신이 참된 사도임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2:22절에 보면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풀 능력이 있으신데 왜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베푸셨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어느 사이비 이단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인간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 기사와 표적을 베풀 수 있다는 뜻일까요? 물론 보편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셨다는 말에 대해 전혀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그만큼 성경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관심에 따라 선택하여 읽고 자기에게 흡족하게 못대로 해석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는 말을 보면 예수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신 이유가 세상에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거자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도를 부르시고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게 하신다면 그 이유 또한 예수님에 대한 증거자로 사도를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의 표가 되는 것은 무엇으로도 자신이 아닌 예수를 증언하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확증되는 것입니다.

 

 

2:43-47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말합니다.

 

 

사도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개입하여 일하신다는 의미합니다. 기사와 표적은 사도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개입으로 나타난 것을 믿는 사람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것을 이상적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교회다운 모습으로 여기고초대교회를 본받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기사와 표적은 그처럼 이상적인 교회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눠 주었다는 것은 세상의 것을 소유하고자 하지 않은 소위 무소유 정신을 보여준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의 소유와 보이는 것이 기준이 되지 않은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사와 표적으로 나타나는 영의 세계입니다.

 

 

기사와 표적은 예수님을 증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온전히 예수께 붙들리고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이 기사와 표적이 베풀어지므로 나타나는 기적의 현장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사도의 표를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전히 예수께 붙들려서 예수님만 증언한 것이 바울에게는 사도의 표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의 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도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함의 자리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견고함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참음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진 견고함으로 세상의 조롱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그리스도께 붙들렸다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는 자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그리스도께 붙들린 신자의 관계에서는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부족하게 여기거나 다른 사람을 나보다 부족한 자로 판단하는 모습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비용을 받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로부터는 비용을 받았습니다. 이것 말고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폐를 끼치지 아니한 것을 빌미로 바울이 사도로서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 바울은다른 교회들처럼 너희에게서도 비용을 받았어야 사도로 인정을 하겠느냐는 뜻으로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는 핀잔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표라고 할 수 없는 일을 두고사도답지 못하다. 사도로 부족하다고 비난한 것에 대한 책망입니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임을 자처하면서도 보이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확증하고 사람을 판단하려는 의식이 참으로 강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이 보이는 것으로 소위 사도다움, 신자다움, 교회다움을 채워서 인정을 받고 그것으로 만족을 누리며 천국까지 확보하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후 11:5-6절을 보면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에는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데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말에는 부족하지만 그것은 사도 됨에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이 사도의 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0절에서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하는 것도 예수님이 개입하셔서 관여하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신의 삶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약함도 모든 것을 예수님의 관여하심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관여하셔서 일하신다는 것이 곧 강함이기 때문에그 때에 강함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에게는 자신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없었습니다.‘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는 말도 바울이 그러한 일을 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관여하셔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밖에 있고 신자 될 수 없는 자를 신자 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도를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사도 됨을 판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도에게 관여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란 사실에 눈을 뜨며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관여하심을 아는 것이 신자의 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은 인간을 바라보는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의식을 책망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심으로 일하시는 영의 세계보다 인간이 활동하는 것을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의식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고 예수님의 관여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사도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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