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4 18:01

(79강) 진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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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13:8-10

고후 13:8-10http://onlycross.net/videos/co2/co2-13081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설교>

바울은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가 증거되는 것이지 자신이 교회로부터 사도로 인정과 대접을 받는 것에 있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자신을 위한 사도가 아니라 오직 진리를 위한 사도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 안에서 진리가 이끄는 힘에 붙들려 모든 일을 하는 바울이었기에 자신에게 힘이 되는 다른 것을 끌어모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도 사도로서의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할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진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사도 됨을 과시할 수단으로 교회를 바라봤다면 사도의 능력과 자신을 의심하는 교회를 향해 자신을 변호하는 데 힘을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에 대한 배신감에 섭섭함을 드러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서 그러한 인간적인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이 진리 안에서 오직 진리에만 가치를 두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에 진리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개인의 입장이나 감정은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섭섭해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오히려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9)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들이 진리가 능력이 되어 바울을 끌어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현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울을 끌어갔던 진리는 지금도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고 부름 받은 신자에게 변함없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붙들려 사는 것이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누가 신자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 답은진리가 능력이 되어 자신을 끌어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자신이 예수 믿는 신자임을 주장한다 해도 진리의 능력에 붙들려 살고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면 신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어느 때에 진리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진리의 능력이고, 따라서 신자는 자유롭게 되는 것에서 진리의 능력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는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실패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루어야 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을 이루신 십자가가 의의 완성이 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자유입니다. 이러한 자유에는 자신을 믿음 있는 자로 나타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믿음 없음을 감추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모두가 믿음 없는 자로 만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의 죄를 보면서 믿음 없음과 실패를 자각하고 인정하게 되는 것에서 진리의 능력이 자신을 붙들어 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진리가 없이는 바울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의는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생각하는 사도다움을 완벽히 갖추었다 해도 그러한 조건이 복음을 증거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능력이 되어 진리가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바울의 사도 됨에 시비를 거는 것은 진리가 능력이 되어 역사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가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성령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도 성령이 능력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무시하고 잊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자와 신자의 관계 중심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십자가는 사라지고 인간의 죄만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만 돌출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인간관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미움이나 다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움과 다툼은 수시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그러한 문제들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실패를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게 되고, 그러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진리에 속하여 진리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베풀어진 긍휼이 어떠한가를 알게 되면 긍휼을 받은 자의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자신을 약하게 보고 무시하는 것에 반응하기보다는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을 입어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10절의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말에도 그러한 바울의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바울의 권한은 예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의 힘으로 작용하는 권한이 아닙니다.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것은 주께서 주신 권한은 죄를 묻고 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진리는 잘잘못을 따지고 행실을 고쳐서 선한 사람이 될 것을 촉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진리가 우리를 선한 자로 세우는 데 뜻을 두고 있다면 바울은 주어진 권한으로 교회의 잘못을 추궁하면서 엄하게 대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신자는 진리를 위하여 택정함을 입어 부름을 받았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세웁니다. 따라서 진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악함을 깨닫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붙들려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러한 교회 됨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를 믿고 진리 때문에 교회로 함께 하고 있다면 진리 안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없는 저주의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함께 한다면 다툼과 분쟁이 있다 해도 그 또한 자신의 실상을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긍휼히 여겨주심을 더욱 감사하게 되는 기회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게 신자는 진리가 능력이 되어 나를 이끌어 감을 알고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진리가 시키는 대로 저주받을 것밖에 없는 나의 본래 자리에서 진리로 오시고 자유 하게 하신 주의 은혜로 감사하는 것이 진리를 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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