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6 20:14

(6강) 환난의 이유

조회 수 149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성경본문 고후 1:8-9

고후 1:8-9http://onlycross.net/videos/co2/co2-0108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설교>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개인이 겪는 환난을 믿음의 연단을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인간은 환난 앞에서는 무너지는 연약함만 반복될 뿐입니다.

 

 

만약 환난으로 인해 믿음이 연단되는 것이면 환난이 거듭될수록 믿음이 강해지는 실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중에는 어떤 환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강의 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환난의 정도와 무관하게 항상 흔들리고 낙심하는 연약한 모습만 확인될 뿐입니다.

 

 

바울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4)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실을 보면 바울이 말한 단계를 거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별히 환난으로 간주할 사건이 없고, 따라서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는 삶과도 거리가 멉니다. 물론 개인의 입장에서 환난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모든 신자가 겪는 동일한 사건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말은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형편에 따라 적용되거나 무관심으로 외면 받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한 것은 환난 자체가 즐겁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 즐거울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의 겪는 정도의 환난과 고생에 비할 수 없는 가벼운 고생이라 해도 인간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한다는 것은 환난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환난이 우리에게 이루는 소망은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뜻이 걸러지고 포기된 순수한 하늘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이 구원 받은 자이기 때문에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환난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환난으로 이루어지는 소망이 즐거운 것입니다. 이 소망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9절을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극심한 환난의 이유를 사도로 하여금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로 해석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환난을 이런 의미로 해석을 했다는 것은 스스로를 믿음의 실력자로 여기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간파하고 배워야 할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우리는 바울을 믿음의 실력자로 생각합니다. 발에 차꼬가 채인 채로 깊은 옥에 갇힌 처지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한 것도 믿음의 실력으로 간주하기에 신자는 바울을 본받아서 어떤 환난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현장으로 보지 않고 인간에게 초점을 두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능성을 두면서 누군가를 본받는 것을 신앙의 삶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은 인간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의 결과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지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이룬 것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부인합니다. 인간에게 가능성을 두면서 인간의 실력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실력이 없으면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로 전락되어 소외되는 길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인간의 실력이 용납되지 않는 다른 세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친히 이루고 계심을 믿는 무리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교회라면 인간의 실력 따위는 통용되지 않고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신앙으로 간주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의의 의미를 두고 자긍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대신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자신의 행동을 의로운 것으로 바라보는 자가 믿는다는 예수는 누구이고 그 믿음은 또 어떤 것일까요? 결론은 모두가 다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능력을 주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능력자로 만들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하셔서 주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참된 믿음을 증거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환난을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바울과 동일한 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환난을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해석한 것처럼 신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삶에서 인간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워간다면 그것이 곧 바울의 환난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환난의 이유는 육체의 고생에 있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힘으로 환난을 극복할 수 있다면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배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감만 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그마한 일에서도 흔들리고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미래로 인한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하면서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과거에서 지금까지 죄인으로만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실을 매일의 삶에서 확인하면서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 헛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무능함을 알게 하십니다. 인간이 자기를 의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런 이유로 환난이 있게 하십니다. 인간을 무능한 자로 만들어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를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을 믿음의 실력자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무능하고 약한 자를 세워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십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는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1. No Image notice by 신윤식 2022/01/01 by 신윤식
    Views 1851 

    설교 원고는 없습니다

  2. No Image notice by 신윤식 2019/09/14 by 신윤식
    Views 12583 

    고린도전서 강해 이동

  3. No Image notice by 신윤식 2011/03/03 by 신윤식
    Views 7371 

    동영상 파일에 대하여

  4. No Image notice by 은석교회 2010/01/01 by 은석교회
    Views 39182 

    이전 홈페이지 주일오전설교 들어가기

  5. No Image 02Nov
    by 신윤식
    2019/11/02 by 신윤식
    Views 1133 

    (7강) 간구함으로 도우라

  6. No Image 26Oct
    by 신윤식
    2019/10/26 by 신윤식
    Views 1498 

    (6강) 환난의 이유

  7. No Image 19Oct
    by 신윤식
    2019/10/19 by 신윤식
    Views 928 

    (5강) 사도의 환난

  8. No Image 05Oct
    by 신윤식
    2019/10/05 by 신윤식
    Views 1230 

    (4강) 넘치는 고난

  9. No Image 28Sep
    by 신윤식
    2019/09/28 by 신윤식
    Views 2275 

    (3강) 찬송하리로다

  10. No Image 21Sep
    by 신윤식
    2019/09/21 by 신윤식
    Views 1260 

    (2강) 고난과 위로

  11. No Image 14Sep
    by 신윤식
    2019/09/14 by 신윤식
    Views 2906 

    (1강) 은혜와 평강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Nex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