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9 15:40

(24강) 같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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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4:12-15

고후 4:12-15http://onlycross.net/videos/co2/co2-041215.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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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본문>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게 됩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루하루를 긴장과 불안 속에 지내면서 이 사태가 빨리 끝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도우셔서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된다면 과연 그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 했기에 더욱 더 강한 믿음으로 향상되는 것일까요?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는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끝나는 날은 있습니다. 그렇지만언젠가는 끝난다.’는 희망을 갖고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자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이 속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참는 수준일 뿐입니다.

 

 

물론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1)는 바울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코로나19 역시 지나가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허락된 시간을 살면서 경험할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 역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그것을 경험했고 또 경험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항상 위태롭습니다.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겨우 지탱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 말이 실감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깥출입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실감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환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환경에서 삽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위한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한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비록 우리를 힘들게 하는 환경일지라도 그러한 환경이 조성된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어진 환경이 힘들어서언젠가는 끝난다는 마음으로 지나가기만 기다린다면 환경을 조성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예전의 편한 환경으로 돌아가기만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의 힘든 사태는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힘든 사태가 주어지고 또 지나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조성하신 하나님의 일인 것을 생각한다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현재의 사태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한 모든 일 또한 하나님이 조성하신 환경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바울을 힘들게 하고 지나가거나 바울 한 개인의 믿음의 연단을 목적으로 하는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이 그런 목적과 이유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바울을 비난하는 고린도 교회에 자신이 겪은 고난을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바울을 옹호하고 바울이 하는 일을 돕는 교회가 아니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심을 품고 비난하는 무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생명은 우리 안에서 사망은 너희 안에서 역사 한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상대를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울과 우리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금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받아주는 인품을 나타내고자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나는 죽더라도 너희는 살리겠다는 식으로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바울이 사망과 생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망이 역사하는 인간에게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조건들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반대로 사망에 속한 인간에게 생명이 역사한다면 과연 그에게 가치 있는 존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바울을 비난 것들이 모두 바울의 조건이나 인간적 자질에 대한 판단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만 사망이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은 모든 인간에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자신을 사망이 역사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을 뿐입니다. 사망은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그때의 문제일 뿐이지 살아있는 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현재는 사망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살아있는 자로서 자신을 좀 더 가치 있는 존재로 격상시켜 줄만한 조건들에게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의 문제였습니다.

 

 

이들에 비해 자기 안에 사망이 역사한다는 것을 아는 바울은 세상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이러한 바울의 심정은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3:8-9)는 말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가 자신에게 생명이 역사한다는 사실에 믿음을 두었다면 인간적 조건이나 자질을 내세워 바울을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말하는 자질이나 조건이 생명이 역사하는 현장에서는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 되심을 믿고 아는 것처럼 여겼던 것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허세였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코로나19 사태에서 더욱 실감하게 됨을 생각하면 지금의 사태가 힘들지만 하나님이 조성하신 환경으로 주어지는 유익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망과 생명이 역사한다는 말을 하는 바울은 이어서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13)는 말을 합니다.

 

 

바울의 말은 시 116:10절의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를 인용한 것입니다. 때문에 본문에 담긴 바울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시 116편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시 116:10절 한 구절이 아니라 그 한 구절에 담긴 시 116편의 내용을 인용하여 말하기 때문입니다.

 

 

116: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 마치 환난과 슬픔을 만난 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함으로써 환난과 슬픔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습니다.

 

 

5,6절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는 말도 그런 의미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인용한 10절의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는 말도 저자가 환난과 슬픔이라는 고통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도우시고 지켜주시고 건져주실 것을 믿었다는 뜻일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환난과 슬픔이 되는 환경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을 바울이 인용했느냐는 것입니다.

 

 

10절의 정확한 의미는 환난과 슬픔으로 고통을 당하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자신의 고통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자에게 하나님은 고통의 환경에서 건져주시는 분이 아니었고 믿음 또한 고통에서 건짐 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도 이 믿음으로 자신의 고난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116:15절을 보면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경건한 자의 죽음을 귀중하게 보신다면 신자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시편 저자의 믿음이라면 환난과 슬픔이라는 고통의 환경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경을 바꾸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목적은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시라도 일하시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세상은 한순간도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은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응답 안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가 원하고 기대한 것과 다르기 때문에 기도에 응답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시편을 인용하면서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말한다고 합니다. 시편 저자와 같은 믿음에 의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에는 인간이 원하는 좋은 환경을 주시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편 저자나 바울과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다면 하나님이 조성하신 환경을 좋은 것 나쁜 것으로 구분한다거나 우리가 원하는 좋은 환경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굳게 믿는 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조성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죽으신 주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우리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십니다. 이것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언제나 세상을 보면서 나를 위해 살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를 기어이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며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이유가 아닙니다. 15절에서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 모든 일의 종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바울도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교회가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함이 있게 되고 그로 인해서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으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믿는 자를 위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일을 현재의 사태가 조속히 종결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그런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신다면 결국 남는 것은 편히 살다가 영원히 사망의 존재로 지옥 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도우시지 않습니다.

 

 

11절을 보면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죽음에 넘기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돕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죽음에서 예수를 만나게 하시고 예수로 인한 생명으로 감사하게 하심으로 은혜가 더하여 넘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유익이고 놀라운 혜택입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는 모두가 영광된 존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시편 저자나 바울과 같은 믿음이라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이 나를 가치 있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이 질그릇처럼 하찮은 우리에게 보배를 가지게 하신 것이 영광이고 신자의 가치임을 알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 무엇을 더 요구하겠습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생명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일 뿐입니다. 세상의 일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시는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든, 어떤 환경이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되어지는 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평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전국을 뒤덮는다 해서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일로 인해서 산다는 것이 위태로운 일이었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버텨온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유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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