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5 15:53

(32강) 새로운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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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5:16-17

고후 5:16-17http://onlycross.net/videos/co2/co2-051617.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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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설교>

바울은 유대교가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음성과 빛으로 경험한 후에 예수님의 복음이 인생의 전부가 된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인생의 길과 방향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만나고 깨닫게 된 부활하신 예수님의 세계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것이 바울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하게 들린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바울보다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열심히 성경을 공부해서 신학 지식을 쌓으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바울의 복음은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고 인생의 전부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전혀 생소하고 낯선 새로운 세계로 삶의 방향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신학 지식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부를 암송하고 성경에 대해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춘다 해도 지식은 결코 우리의 삶을 낯설고 새로운 길로 끌어가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식적 실력과 무관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가장 미련하고 헛된 짓 중의 하나는 자신의 성경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8)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은 신자가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과 담을 쌓고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세상의 것을 전혀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이 빈곤하게 생활하는 것을 신앙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배설물이기 때문에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그만큼 가치 없고 시시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된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의미로 자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빛이 됨을 깨닫게 되면서 이전에 추구하던 자랑스러운 것들이 하나같이 시시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예수 경험이었고 오늘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세상의 일보다 예수 믿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일에 힘쓰기보다 교회 일에 힘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한 신앙은 유대교 방식으로 가는 것일 뿐입니다. 종교적 교양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것을 믿음에 의한 변화로 오해하는 큰 잘못에 빠지는 결과만 초래하게 됩니다.

 

 

바울은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말 그대로 새롭게 창조된 것을 말합니다. 기존의 것이 조금 다르게 변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은 그대로인 채 행동이나 종교적 열심에 조금 다른 변화가 있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변화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은 지금의 교회가 강조하는 성화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를 새로운 피조물로 말하지만, 정작 신자로 자처하는 우리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실을 두고 생각해 보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만큼 달라 보이는 것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 자신도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삶이 달라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설령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변화가 있다 해도 그 수준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행동이나 언어, 성격이 개선된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변화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을 이전 것이 지나간 새것으로 말합니다. 이전 것이 지나갔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서 이전 것은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자 됨과 바울이 말하는 신자 됨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말로 다가오는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전 것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16절의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는 말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아는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이전 것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무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바울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은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아는 인간의 습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을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그들이 보기에는 바울의 여러 모습이 사도직에 부적절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아는 것을 바울은 이전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 된 신자는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알고 판단하는 습성이 사라졌다는 것일까요? 그런 의미라면 우리는 항상 신자 됨이라는 문제에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수시로 드러나는 것은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알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죽은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습성입니다.

 

 

6:3절에 보면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으로 가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의 반응입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된 것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예수님은 단지 목수의 아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가르치며 랍비 행세를 하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목수의 아들답지 못한 도에 지나친 행동으로 보인 것입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이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라며 놀랐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배척한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의 관점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이라는 육신의 관점으로만 보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육신을 따라 아는 것이고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든 예수님이든 육신을 따라 아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육신을 따라 바라보고 판단하는 안목을 벗어 던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을 육신을 따라 아는 이전 것이 지나간 자로 말한다는 점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바울은 육신을 따라 아는 육신의 시각 자체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의 존재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육신을 따라 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 자신의 관점과 기준에 맞춰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목사라면 목사는 이래야 한다는 자신의 관점과 기준이 있습니다. 거기에 맞지 않으면 목사답지 않다라는 비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에게 믿음의 이유는 자신의 이익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의 삶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자기 생각과 기대가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삶의 현실이 자기 생각과 기대에서 벗어나면 믿어도 별수 없다라는 식으로 실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도 그들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에 놀랐다 해도 목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도무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는 걸림돌이었습니다. 고작 목수의 아들이 자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이유였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의 안목입니다.

 

 

바울도 이전에는 예수를 육신을 따라 알았습니다.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자신의 힘으로 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백성 됨을 지킨다고 생각했던 바울에게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다가 사형당한 미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러한 바울이 이전 것이 지나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육신이 아닌 영으로 아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피조물은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도 육신이 아닌 영을 따라 아는 안목이 있게 된 신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오해하는 것은 믿음이 우리를 변화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도 우리를 변화하게 해서 예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바울의 말은 변화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아는 기존의 인간에게는 없는 영이라는 새로운 시각입니다.

 

 

6:3절에 보면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은 상태의 인간을 두고 육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육신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육신을 따라 알고 바라보는 것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성령이 오시고 육신이 아닌 성령을 따라 아는 새로운 시각이 있게 된 것을 두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아닌 영을 따라 사람을 보게 되면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시각에 있게 됩니다. 소유나 행함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죄인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자신에게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행함을 비교하고 따지면서 믿음을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전히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알고자 하는 자신을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으로 실감하게 되는 것이 영의 사람으로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새 것의 의미를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틀에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세상은 악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비난받던 사람이 개과천선하여 선한 행동을 하게 되면 새 사람이 되었다며 칭찬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피조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에 의한 존재론적 변화가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인데 그것은 영의 시각이 있는 영의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조물의 등장이며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다시 사신 부활의 생명 안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죽음의 존재인 우리가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 됨을 우리의 변화와 행함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육신을 따라 알고자 하는 이전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일 뿐입니다.

 

 

고전 15:51-53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신자가 누릴 영광된 변화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예수님으로 완성되었고 예수 안에서 이미 변화된 자로 존재합니다.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로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가 육신이 아니라 영을 따라 서로를 알고 예수를 아는 새로운 피조물로 함께 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적인 조건이나 행함을 기준하여 판단하고 배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외적인 조건과 우리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난하고 배척하는 일에 바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은 한순간도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고 예수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인간의 참된 현실입니다.

 

 

2: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힘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두렵고 떨림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한순간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행함으로 자신을 판단하고자 하는 악한 습성의 자신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마음으로 주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예수 안에 부름 받은 신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영의 시각이고 이러한 시각으로 사람과 예수를 바라보게 된 그들을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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