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8 16:27

(19강) 오직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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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갈 3:15-16

갈 3:15-16http://onlycross.net/videos/gal/gal-031516.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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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5.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설교>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은 본래 세상에 없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는 척하면 안 됩니다. 비록 단어는 잘 알고 익숙하다 해도 그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 사랑, 은혜가 다르고 복이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것이 세상에 있던 기존의 것과 같다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의 가치는 세상 것과 같은 수준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세상에 있는 것을 굳이 하나님이 주실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가령하나님이 믿음을 주셨다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우리가 알고있는 기존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또한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의 복은 복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성경의 단어는 먼저 이런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은 하나 같이 우리에게 각인 되어 있는 기존의 것과 충돌되는 특성을 보입니다. 만약 충돌되는 것이 없다면 성경을 내가 알고 있는 의미로 희석하여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해석으로 인해서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고 자기의 뜻에 하나님을 끌어당기는 오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라는 한 분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전달되었음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아브라함과 혈통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이방인에게 어떻게 미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그리스도 예수 안이 복이 전달된 방식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이방인은 개입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선함이나 의로움을 통로로 하여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 활동만을 범위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전제로 하게 되면율법을 지키는 것이 믿음의 증거고 그 믿음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15,16)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오직 한 사람이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전달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복의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누구로도,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미치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한다거나 선한 일에 평생을 다 바쳐 수고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복에 참여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기존의 교회가 가르치는 복을 받는 수단이나 방법이라는 것들은 모두 성경에서 벗어난 인간의 종교성에 의한 산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복의 통로가 그리스도라는 말을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복과 다릅니다. 복의 종류가 여럿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 외의 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의 복이 등장하고 그 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복과 복의 충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했던 기존의 복은 복으로서의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되면서 복 아닌 것을 복으로 추구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게 되는 경험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아브라함의 자손은 오직 한 사람인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창 12:2-3절의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는 말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으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복이 되는 것만 아니라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시지만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은 무엇이고 저주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성경에서 들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이란 이름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아브라함을 축복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데 우리가 아브라함을 축복한 적이 없다면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 되지 않겠습니까? 반면에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브라함을 저주했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또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13절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는 말대로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죄로 인해 나무에 달린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상을 갈 2:22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저주 아래에 있고 죄 아래에 가두어진 존재로 태어납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여 저주를 받기 전에 이미 저주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상을 생각하면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신다는 말씀은 논리적 모순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저주 아래에 있는 자를 저주하신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지식과 상식과 기준에 맞춰 섣불리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내려진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복을 받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축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을 저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저주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이유는 저주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저주 아래에 있고 죄 아래에 갇힌 인간의 실상과 맞지 않습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가 저주를 받지 않고자 하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자신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주 아래에 있으면서도 저주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미 복에 들어와 있는데도 그러한 실상을 알지 못하고 복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복과 저주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나타내신 것이 창12:2-3절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들에게 성취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큰 민족이란 자신들을 가리키고 이름의 창대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에게 이어질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않으셨다고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게 특정된 약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그리스도라는 한 분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그리스도로 성취되었다는 것이고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이 된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복이 되심으로 약속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 21:12절의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바울도 롬 9:6-8절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는 말로 약속으로 오신 오직 하나가 아브라함의 씨로 여김 받음을 증거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생각해 본다면 소위복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이미 복에 참여하고 복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복을 복으로 여기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복으로 증언하는 복음의 말은 탐탁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복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만이 되고 그동안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찾았던 목표가 상실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것에 해당이 됩니다. 아브라함을 세워서 나타내신 그리스도가 복이 되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불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이 오직 한 사람인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신 말씀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앎은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요? 무엇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인 그리스도가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모든 것이 약속을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열심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된것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수고와 열심은 하나님의 일에 개입될 수 없음을 알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기 부인이 있게 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으로 약속하신 오직 한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의가 되신다는 존재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가 복에 참여된 것으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를 믿었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을 주신 하나님이 성령을 받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고 그 모든 것을 믿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로움만 가치 있는 것으로 높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것도 신자로 부름을 받고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믿는다면 더는 율법을 이루고 실천하는 것에 마음 둘 이유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사랑할 자로 택하시고 부르심으로 지금의 믿음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일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신자는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 안에서 행하시고 이루신 하나님의 일 안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약속의 성취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살피며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높이는 것이 신자의 본분이고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은 늘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로 향하게 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자 됨과 믿음 있음의 증거가 자신이 행하는 일로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울이 전한 내용 안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시선을 두는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자의 현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폐하거나 더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5절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에 인간의 열심이나 실천은 요구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행하는 것을 참된 믿음으로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신 그리스도만 믿는 것으로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86:11-13절을 보면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진리에 행하는 것을 주의 도를 알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며 주를 찬송하는 것으로 말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의 도는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의 영혼은 깊은 스올, 죽음에서 건지신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오직 한 사람이라는 약속으로 오신 그리스도께로만 향하게 하면서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음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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