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3 15:37

(1강) 전도자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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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 1:1-2

전 1:1-2http://onlycross.net/videos/ecc/ecc-010102.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설교>

일반적으로 전도서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일 것입니다. 전도서가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로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전도서를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의미 없고 허무한 것으로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허무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인생이 헛된 것이라면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모든 일을 헛된 것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물론 헛되고 허무한 인생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로 달라집니다. 개인의 유익과 행복을 위한 인생이 전부라면 그것이 헛된 인생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무엇으로도 원하는 행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개인의 행복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복과 저주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자기 열심과 노력으로 의미 있게 보이는 인생을 산다 해도 죄 가운데 있다면 저주의 존재일 뿐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든 영원한 저주에 갇히는 것이 운명이기 때문에 헛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헛된 인생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의 의미와 내용을 알고 복에 거하는 것입니다. 참된 복의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모든 일들은 헛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1)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 솔로몬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전도서의 저자를 솔로몬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는 말을 단순히 솔로몬이 전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말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아들과 예루살렘 왕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물매와 돌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일은 유년부 아이들도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다윗이라는 이름에도 다른 인간과 동일하게 죄가 있습니다. 밧세바와 동침하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남편인 우리아를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낳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다윗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의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솔로몬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아마 다윗이 평화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다윗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평화를 누리든 다윗이 심적으로 평화를 누리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늘 잊고 사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환경적이고 심적인 평화만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자로 존재하는 인간에게 평화는 없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죄 문제가 나오면 항상 결론은 그리스도로 드러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평화가 깨어진 인간에게 평화가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로 오신 것입니다. 물론 환경적이고 심리적인 평화가 아닌 하나님과의 영원한 평화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인 것이고, 이 세상을 알게 된 신자에게 세상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헛된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헛되다는 말은 이러한 시각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말에 그것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를 죽인 다윗의 악함은 인간의 육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으로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다윗과 동일한 죄 가운데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육신의 모습을 보여준 다윗도 육신으로는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시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로 예수님의 족보가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의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성의 증거물인 것이고 그것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원 밖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보내심으로 구원이 주어지게 한 것입니다.

 

 

다윗 역시 말씀드린 것처럼 죄로 인해 구원 받지 못할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하심으로써 구원에 있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리스도가 영원한 약속의 성취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내막이 다윗의 아들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창세전부터 계획된 것이고 그 계획이 변동되지 않고 성취 된 사건이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그리스도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계획하셨음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세상을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평화가 아닌 원수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을 이스라엘이 아닌 예루살렘 왕으로 칭하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윗이 빼앗은 것입니다.

 

 

다윗이 여부스 사람을 치려고 할 때 그들이 다윗을 무시하면서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빼앗은 후에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삼하 5:8)는 속담이 생깁니다.

 

 

여부스 사람이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다윗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을 생각하지 않고 다윗의 힘과 자기의 힘을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힘과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속성의 인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의 집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 오지 못한다는 속담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왕의 역할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왕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왕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세상의 현실은 헛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세상관입니다. 이러한 세상관에서 나오는 전도자의 말씀이 전도서입니다.

 

 

전도자의 말씀은 전도자와 동일한 세상관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말에 반발로 반응할 것입니다. 헛된 인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인생을 꿈꾸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향해서 그리스도가 아닌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말에 옳다며 동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았고 그 세상이 소망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마음으로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안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전도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의 보이는 것에 기대를 걸고 그것이 인생을 보람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고 착각하는 인간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헛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 중에 어느 하나도 의미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그리스도로 향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죄 아래 있는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한 사랑을 보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참된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 헛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Chapter 1

 

The Words of the Preacher

 

The words of the Preacher,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Ecclesiastes 1:1-2 KJV)

 

(Sermon)

 

What we can be reminded of in the Book of Ecclesiastes may be ‘all is in vanity’ because the Book begins with it. That’s why we tend to think that it talks about nihilism, assuming the Book defines all things in the world as vanity.

 

The Book of Ecclesiastes doesn’t talk about nihilism. If all were vain in life, we would have to say all the work of God in His intervention for us is also vain. Of course, there are things vain in life. Yet, that is divided by what the things are for. If it is all for individual happiness and benefits, it is vain in life because nothing can suffice what we want.

 

There is more important than individual’s happiness in life. That is the matter of blessing and curse. No matter what one tries to make one’s life meaningful, if one is in sin, one is nothing but under the curse. Regardless of how one lived, one’s destiny is eternal destruction, which is vain.

 

The Book of Ecclesiastes begins with Verse 1, “The words of the Preacher,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It is a general view that the son of David is Solomon, the writer of the Book. Yet, we shouldn’t stop thinking that the verse tells us who wrote the Book because there is far deeper meaning of saying so.

 

David is recognized as a great king of Israel. The story of his slaughter of Goliath at his youth is as famous as most of Sunday school students know. Yet, in his name, there is a sin like others. That is having Bathsheba and killing her husband Uriah, and Solomon, born between David and Bathsheba.

 

David named Solomon. Yet, Prophet Nathan, sent by God, called him, ‘Jedidiah.’ Solomon means ‘peace’, which seems David wanted it for his country.

 

Yet, there is one thing David was forgetting. That is, whether Israel is in a peaceful condition or David is enjoying peace in his mind, if there is a disconnection with God, peace can’t stand. We also forget this in life. We would only want peace in mind and environment, uninterested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while forgetting the fact that no one is in peace because of sin.

 

You know when ‘sin problem’ appears, the conclusion is Christ. He is the only One, who can solve the problem. That is, Christ came to us as Peace, not environmentally or mentally but the eternal peace with God. This is the new world fulfilled by Christ and the believers knowing the world can look at all things of labor and efforts in the world are vain. This is where ‘vanity’ in Ecclesiastes should be viewed and this is what it means to be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The malice of David, sleeping with Bathsheba and putting Uriah to death, shows us well of the flesh, meaning all in flesh are nothing different from him. David in flesh is disconnected from God. Such person like David, God intervenes in the name of ‘love’, presented in ‘Jedidiah.’

 

In Matthew 1:1, it says,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Abraham, who distrusted in God for the promised son, begot Ismael. Thus, Ismael is a testimony of power of human flesh for salvation, proven that Abraham is not in salvation. Such like Abraham, God saves by giving him the promised son, Isaac.

 

David, as spoken earlier, doesn’t deserve salvation either. Yet, by the intervention of God, it is the covenant of God that he is in salvation, whose love is fulfilled by Christ, dying on the cross. Keeping mind that all these above are included in ‘the son of David’ in Verse 1, the way of God for salvation was determined before the creation and it never changes and it was accomplished at the cross.

 

Thinking that God had a plan to make a new world, run by His love in Christ, at the creation, we can learn how believers should view the world. It is all vanity out of Christ, who came to the world as God’s love because the world without Christ is enmity with God, not peace.

 

We also ought to pay attention that Solomon is called king in Jerusalem, not king of Israel. In Jerusalem, there were originally the Jebusites, conquered by David.

 

They scorned David when he was about to attack them by saying in 2nd Samuel 5:6, “And the king and his men went to Jerusalem unto the Jebusites, the inhabitants of the land: which spake unto David, saying, Except thou take away the blind and the lame, thou shalt not come in hither: thinking, David cannot come in hither.” And David says after the defeating them in 5:8, “The blind and the lame shall not come into the house.”

 

They looked down David because they compared the power of David with that of theirs, not knowing God, being with him. They were ignorant that man’s power and efforts before God was useless. The saying, ‘the blind and the lame shall not come into the house’, means that human power is no presence in the presence of God, the house of David.

 

Thus, what a king of Jerusalem is supposed to do is to teach his people that they live not by their own power but the presence of God. That is ‘king in Jerusalem.’ Therefore, at king in Jerusalem point of view, all things, not knowing the love of God and making efforts for individual happiness are in vanity. This is how the writer thinks of the world. And it is the Book of Ecclesiastes, written from such point of view.

 

The words of the preacher can be accepted in the same was of the preacher’s point of view of the world. Otherwise, there would be only rejection of the words because the world is where there is full of dream, something meaningful, not vain. If one can claim ‘without Christ, all is vain’ to such world, one already knows the new world, Christ in the hope of the world. This is ‘ecclesia’, where there is one mind in Christ. Such church exists in the world as the new world.

 

As I have told you earlier, that the preacher says all in vain doesn’t mean all things occurring in the world are vain. Men, who are seeking for their own happiness in their hope, are vain. It is vain that they think if they do something meaningful, they become meaningful because without Christ, there is nothing meaningful.

 

Now, what is left for us is that we look at Christ. It is because He is the only hope for us, sinners. It is the only meaningful way of life that we see the eternal love in Christ and live in such hope of the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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