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8 12:56

(15강) 더 나은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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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 4:4-6

전 4:4-6http://onlycross.net/videos/ecc/ecc-04040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설교>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앉아서 자신의 종교가 추구하는 내용으로 대화를 한다 해도 이상하게 부딪힘이 없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교, 카톨릭, 개신교, 유교 등등의 종교가 서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자신의 종교가 우월하다거나 기독교인이 하나님만 유일하신 신이라는 주장을 펼친다면 충돌을 예상할 밖에 없지만 종교가 가르치는 내용만으로 대화를 한다면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가령 6절의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평온입니다. 또한 두 손에 가득할 정도로 소유가 많다 해도 그 소유가 평온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거의 상식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많은 소유로 인해서 분란과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손에만 가득해도 평온하다면 그것이 더 낫다는 말에 누구라도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성경을 보기 때문에모든 종교가 서로 길은 달라도 추구하는 것은 같다’‘결국 진리는 하나다라는 등의 말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종교다원주의’(모든 종교는 동등하며 그 나름대로 종교적인 진리가 있다는 태도)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평온과 행복을 가르치는 것에 종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서같은 말을 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그것은 언약적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언약적 가치를 잃었다는 것은 언약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를 잃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인간의 경험과 상식과 지식에 부합되는 방향이 아니라 십자가의 가치가 드러나는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자기의 수고와 재주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수고와 재주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차이가 소득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시기가 있게 됩니다. 즉 인간은 타인의 번성에 대해 시기 없이 축하하는 성정의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있으면 높이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시기로 인해 트집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모두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시기하고 시기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나보다 잘된 사람에 대해 시기하지 맙시다라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대신 시기가 있을 때 세상이 선한 것으로 인정하는 윤리적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감춘다 해도 결국 말씀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 12:26절에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눌 수 있고, 내 수중에 있는 것이라고 하여 내 것으로 주장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삶의 전체를 하나님의 일하심에 의해 발생하는 현장으로 여겼을 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재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주어지는 현장으로 바라볼 때 있게 되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 관계에서는 남보다 잘되고 못되는 것이 없고 다만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으로 완성된 은혜만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완성된 생명의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의 수고와 재주의 결과로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웃을 시기할 것도 시기를 받을 것도 없는 성령의 세계로 증거 되는 것이 언약의 가치를 잃지 않은 교회인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 것은 삶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소득의 격차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왜라는 불만과 함께 시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믿음을 빙자하여 번성하는 것을 복으로 고집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언약을 이루신 가치, 즉 십자가의 가치를 붙들고 지키고자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에게 시기 받을 정도로 번성했다 해도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의 언약에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마지막을 장식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다면 자신의 수고와 재주에 의한 번성 또한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번성으로 이루거나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고 이루시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며 이 지혜가 있음으로 평온이 있게 됩니다.

 

 

세상은 평온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평온을 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의 말대로 평온함이 있다면 한 손에만 가득하다 해도 괜찮습니까? 한 손에만 가득하다는 것은 적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보다 적게 가진다 해도 평온하기를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항상 평온과 함께 두 손에 가득한 삶을 기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추상적으로 살아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살아계셔서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하루하루 겪으며 살아가는 삶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두 손에 가득하든 한 손에 가득하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일 뿐입니다.

 

 

남보다 많이 수고하고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적게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재주에 따라서 소득이 결정되는 것이 삶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고와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다면 시기하는 그 이웃은 삶이 하나님께 다스려지고 있음을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지혜가 있는 것이 신자라면, 시기 하는 이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미워하고 믿음이 없는 자로 판단해야 할까요? 시기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이면 설령 시기를 받는다 해도 자신 또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보다 우월한 이웃에 대해서는 시기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시기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시기하는 자신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음을 간파하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소득의 많고 적음에 삶의 가치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많은 이웃의 소득에 대해 시기하는 것을 삶의 가치가 그리스도께 있음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라면 시기하는 이웃에게 두 손에 가득한 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에 한 손에만 가득하다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이 잘 된 것임을 전달해 주는 것이 이웃을 돕는 이웃 사랑입니다. 그래서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낫다는 것이 삶에 대한 진심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온의 조건은 가득한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가득한 소유를 추구할수록 그 마음은 불평과 불만, 시기로 확산될 뿐입니다. 소유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행하시는 결과로 주어진다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평온이 사라지는 상태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두 손에 가득하든 한 손에만 가득하든 평온이 없는 형편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형편이라면 인간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삶의 전부를 하나님이 일으키신 사건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시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을 위해 준비하시고 이루신 것이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면 두 손에 채워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십자가라는 세계로 부름 받은 구원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그리스도는 항상 충만으로 살아계십니다. 소유가 두 손에 가득하든 한 손에만 가득하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기에 그리스도가 평온이 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의 모든 일은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일 뿐입니다.

 

Chapter 15

 

The Better Quietness

 

Again, I considered all travail, and every right work, that for this a man is envied of his neighbour. This is also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The fool foldeth his hands together, and eateth his own flesh.

Better is an handful with quietness, than both the hands full with travail and vexation of spirit. (Ecclesiastes 4:4-6 KJV)

 

(Sermon)

 

We can see there is no conflict when those who have different religions talk about what they pursue in their religions, meaning Buddhism, Catholicism, Protestant, and Confucianism come to an agreement. Of course, there might be some conflicts if they say which one is superior or their god is the only true god, but as long as they share what they teach, it would be fine.

 

For example, there would be no one disagreeing with Verse 6, “Better is an handful with quietness, than both the hands full with travail and vexation of spirit.”

 

All people pursue peace over the matter of religion. It is common to know that possession can’t guarantee peace even if the possession is great, thinking the possession would rather create fights and divisions. Thus, everyone would agree with the verse.

 

That’s why many say, ‘teachings in the different religions are the same.’ I can’t say it has nothing to do in Christianity with ‘religious pluralism’, echoed by many preachers.

 

Yet, if we can hear some nuances that Christianity says something similar to what other religions say, we can diagnose that it is because there is a loss of the value of covenant, meaning that it is the loss of the value of the cross of Jesus Christ, who is the Finisher of the covenant. Therefore, we should recognize that when we interpret the Bible, it must be the direction of the value of the cross, not human knowledge, sense or experience.

 

In Verse 4, it says, “Again, I considered all travail, and every right work, that for this a man is envied of his neighbour. This is also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All in the world live with their labor and talent. Since there are differences in labor and talent, it is true that the differences cause to produce different outcomes, resulting in envy and jealousy. That is, no one can congratulate others for their prosperity without jealousy. When we see someone who is better and more just than us, we wouldn’t respect him or her but look for something negative in jealous mind.

 

It is not a matter of some but universal for all. That’s why it is naturally accepted by all that there are the envious and the envied. Thus, let us not say, ‘don’t be jealous of others’ while meditating the passage. Instead, we ought to notice that all evil natures are revealed before the Word of God no matter how hard we try to cover our jealousy and sinful nature with moral behaviors.

 

In 1st Corinthians 12:26, it says, “And whether one member suffer,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or one member be honoured, all the members rejoice with it.”

 

We can say this is the essence of the church, meaning, ‘all can share what they have and no one claims one’s ownership. This can be seen when all view things occurring by the work of God. It is the relationship when seeing the work of God, not living by labor and talent of their own.

 

In such relationship, there is no superiority or inferiority but the grace, accomplished by Christ. Since this is the world of the life, completed by Him, there is no boasting of efforts or skills of human beings. Thus, when such being seen, it is the church, not losing the value of the covenant, and it is testified by the Holy Spirit.

 

That people envy and are envied due to works and gifts means that they don’t see their living is the place where God is working. They just complain by saying ‘why me?’ when seeing the differences of their incomes. In such world, we should ponder if it is right to pursue prosperity in the name of faith while holding the value of the covenant, the value of the cross.

 

Even if we are prosperous as much as we are envied by others, the power of the salvation is on the covenant of God. Hence, we come to realize that the wealth by efforts and skills are also in vain in the aspect of the judgement of God, the last day. It is because there is nothing we can grasp without the work of God. Knowing such is the wisdom, by which we can be in quietness.

 

I have told you the world wants quietness. I’m sure so do you. If so, as the Preacher says, is it OK to have full in one hand only? It means a little. In other words, can you be in peaceful mind if you have less than others? Even if we say yes in knowledge, we can’t deny we still want to have full in our two hands.

 

God is ruling over all in the world as the Living God, not as an abstract nor idealistic one. His work includes our daily lives. Thus, whether we have full in one hand or two hands, it is of God.

 

Even if one has more talents and efforts than others, one might have less because how much we come to have is not of us. Thus, if one is envied by one’s neighbors due to one’s labor and talent, it is the evidence that the neighbors ignore the fact that all are reigned by God.

 

Then, what attitude should a wise believer show the neighbors? Should he or she judge the neighbors have no faith and hate them? If having jealousy is no act of faith, we ought to know being envied is no act of faith either because all react with jealousy to superior neighbors to themselves.

 

Believers are not those who are not jealous but those who recognize they are not seeing God while being jealous of others because it is wisdom. They find the ignorance that they still see their possessions although the value of life is in Christ.

 

If this is what believers are, they ought to be able to say to the envious neighbors, ‘having full in two hands can’t be salvation.’ Furthermore, it is the love of neighbors to tell them since Christ is the power of salvation, although having full only in one hand is fine as long as believing in Christ. Therefore, ‘handful with quietness is better’ is possible in Him.

 

The condition of having peace is not on possession at all. It is true that the more possession we pursue, the more complaint and dissatisfaction we end up having. Since we don’t see how much we have is of the unilateral work of God, we lose the quietness. Thus, it is not wrong to say that we are always in the loss of quietness whether full in two hands or one hand.

 

If it is our situation, what we need first is to see all things are done by God in faith and know Christ is what God has prepared and fulfilled for His people. It is because knowing Christ is in salvation, called to the world of the cross, regardless of possession.

 

That’s why Christ is always alive full in the hands of believers. As they look at Him only, they can experience He is the Peace whether they have or not. Being aware of the judgement of God, believers know things without Christ are all vain like catching w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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