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7 15:01

(28강) 책망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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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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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설교>

인간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멀리하고 유리한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종교를 선택하는 것도 신을 믿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입니다. 교회를 찾는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를 믿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것입니다.

 

 

믿음이 인생에 불리하게 작용할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힘들 때 위로가 되고, 마음에 평안을 주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교회를 찾습니다. 만약 믿음이 자신을 힘들게 하고 인생에 있어서도 전혀 유리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있다면 예수를 믿고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유리하다거나 즐거움이 된다거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이 붙들려간 대제사장의 집 바깥 뜰에 있을 때 한 여종이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추궁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를 알아보는 다른 여종이 또 있었지만 베드로는 또 다시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부인하는 이유는 예수님과 아는 관계로 드러나는 것은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불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베드로에게 예수님과의 관계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도 유리하지도 않은 존재였을 뿐입니다.

 

 

인간의 헛된 망상과 착각은 예수를 믿는 것이 인생에 유리할 것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세상에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도 무시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들 하나하나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불리한 내용들뿐인데 유리한 내용으로 교묘하게 해석합니다. 그로 인해서 성경의 기능이여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책망이 사라집니다. 목사의 설교에 책망이 있다 해도 그것은 말 그대로 목사의 책망일 뿐 성경의 책망은 아닙니다.

 

 

5절에 보면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책망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윗사람이거나 힘이 있는 사람의 책망이라면 어쩔 수 없이 듣고는 있겠지만 속마음은 불편할 것이고 책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잘못을 바르게 지적하는 책망이라 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연히 책망 듣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신 노래 듣는 것을 선택합니다. 노래에는 즐거움이 있을 뿐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현대인들의 믿음은 모방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방을 하는 것은 참된 믿음을 알고 그 믿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아닌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열심히 모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방된 믿음이 인간에게 유리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잘하면 복으로 보상되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는 책망이 없습니다. 책망이 있다 해도 인간의 기준에 의한 책망 아닌 책망일 뿐입니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만 인간은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으로 주어지는 유익을 알지 못합니다. 진리는 우매한 자의 노래가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단지 자기감정에 충실하기에 책망은 기분 나쁘고 노래는 기분 좋다는 단순한 감정에 따라 판단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내고 깨닫게 하는 것이 책망인데도 불구하고 책망을 듣고자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지혜로운 자의 책망이 필요한 존재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된 진리에 관심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6:8절을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활동하시는 것은 책망입니다. 책망은 단순히 죄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 기준이 잘못되었음에 대한 책망입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인간의 기준에 의하면 믿음이 정당한 자와 정당하지 못한 자의 구분이 있게 됩니다. 인간의 행함이 기준의 중심에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함 기준에 부합하면 정당하고 부합하지 못하면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판별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행함 기준에 맞추어 생각하면 스스로를 책망의 대상자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설령 책망을 들어야 한다 해도 행함에 미흡한 부분을 수정하면 얼마든지 정당한 믿음이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낫다 해도 자신에게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은 자신의 유리함만 추구하며 예수 또한 인생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배척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무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전 12:3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가 주라고 믿어주고 입술로 고백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주변의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이 아니고는 안된다고 합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성령에 의해 책망을 받고 책망을 통해서 자신이 죄에 갇힌 저주의 존재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인간의 무능력과 불가능성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주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시는 모든 내막으로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믿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진리의 길로 가게 하고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매한 사람의 노래를 듣는 자리에는 즐거움이 있고 웃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죄의 존재인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즐기는 것에 더 깊이 묻히게 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어 알게 하는 책망이야 말로 주를 보게 하고 진리로 이끌어가는 유익인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고 말합니다.

 

 

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는 처음에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 올랐다가 순식간에 꺼지는 특성을 빗대어 말하는 것입니다. 죄의 존재인 인간에게 생명이 되는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우리를 잠시 웃게 하는 것이 전부인 헛된 것에 치우쳐 진리를 외면하는 우매함의 실상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존재로 태어난 인간의 실상, 자신의 처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가 결국 지옥의 탄식이 된다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미련함입니다.

 

 

7절에서는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뇌물은 자신의 탐욕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병폐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앙으로 생각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실상입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유익을 기대하고 신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뇌물의 의미에 해당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망하는 자의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심판의 존재라는 사실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낫다고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듣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혜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씀이 되어 우리를 책망하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며 진리이신 주께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가장 복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매한 자들의 노래, 웃음 소리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자신으로 인한 애통이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책망이 되어 진리로 인도하는 은혜를 보시기 바랍니다.

 

 

Chapter 28

 

The Rebuke And The Song

 

It is better to hear the rebuke of the wise, than for a man to hear the song of fools.

For as the crackling of thorns under a pot, so is the laughter of the fool: this also is vanity.

Surely oppression maketh a wise man mad; and a gift destroyeth the heart. (Ecclesiastes 7:5-7 KJV)

 

(Sermon)

 

Men take what is good and discard what is bad in all situations. Choosing a religion is of the same manner that believing in gods is good. Those who come to church buildings in Christianity follow the same pattern that they think believing in Jesus is beneficial.

 

There is no one who thinks faith is disadvantageous. People come to worship services for their comforts, peace and joy in mind. Otherwise, they wouldn’t have come. If so, do you think believing in Jesus is advantageous or fun for the life you are pursuing?

 

When Peter was at the high priest's palace in the capture of Jesus, a damsel said to him, “Thou also wast with Jesus of Galilee.” Then, he denied in front of all, saying he didn’t know Jesus. There was another one who recognized him, but he denied Him again. The reason was the relationship with Jesus was disadvantageous for him. At the very moment, the Lord was neither helpful nor advantageous to Peter.

 

Our fantasy and misconception is that believing in Jesus would be advantageous for life. While reading the Bible, we ignore the words of the Lord such as giving a sword on earth or being hated by the world in the name of Jesus. Although every word of the Lord is disadvantageous for life, we would cunningly change it to advantageous one. Consequently, one of the functions of the Bible, the rebuke, disappears. Even if preachers rebuke the congregation, it is preachers’, not that of the Bible.

 

In Verse 5, it says, “It is better to hear the rebuke of the wise, than for a man to hear the song of fools.”

 

No one wants to be rebuked. If one is rebuked by a boss or a figure in authority, there is no choice, but one wouldn’t want to be rebuked in mind repulsively. Even if one is rebuked for a correction, one wouldn’t acknowledge one’s wrong doing due to one’s sinful nature. One would rather choose to hear the song because there is nothing to rebuke.

 

In this sense, the faith that christians in the modern Christianity have can be viewed a fake one, meaning not copied from the true one but a mere misconception. Such is used to give people comforts, benefits and happiness. There is no rebuke. Even if there is rebuke, it is nothing but of man’s idea.

 

Although the Preacher says it is better to hear the rebuke of the wise than to hear the song of the fools, we don’t know why it is so. We know not that the truth is taught through the rebuke of the wise, not the song of the fools. It is because we judge what is good and bad depending upon our emotions. Even though the rebuke is the one that reveals such foolishness, why we wouldn’t hear it is because we don’t consider the foolish, proving that we don’t have an interest in the truth.

 

In John 16:8, it says, “And when he is come, he will reprove the world of sin, and of righteousness, and of judgment.”

 

The rebuke is what the Holy Spirit does to us when He comes. This rebuke is not to blame the sins we have committed but to reveal our wrong criteria. Our criteria on sin, righteousness and judgement are to divide what is justified and what is not justified by faith because our works are the center, meaning we are justified if we have works and we are not if not.

 

Yet, if so, we can’t see ourselves as the ones who are to blame. Even if we are rebuked, we still see ourselves with potentials to be better in faith. That’s why although the Preacher says it is better to hear the rebuke of the wise, we don’t think it’s necessary. After all, we are ignorant that we seek only for our own benefits and discard all the disadvantages. One thing for sure is that it is not faith, believing in Jesus as the Lord at all.

 

In 1st Corinthians 12:3, it says, “Wherefore I give you to understand, that no man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calleth Jesus accursed: and that no man can say that Jesus is the Lord, but by the Holy Ghost.”

 

Do you think it is difficult to believe in Jesus and confess Him as the Lord? Most christians wouldn’t think so because they would do it at churches in the acknowledgement of others.

 

Yet, Paul says it is only by the Holy Spirit, implying no one else can because only when one is rebuked by the Holy Spirit and sees oneself captured in sin, realizing one’s helplessness and incompetency, can one give thanks and praise God while looking up to the Lord on the cross. Such faith can lead us to the way of the truth and the eternal life.

 

Thus, it is better to hear the rebuke of the wise than to hear the song of the fools. Even though there is a pleasure and laughter in the song of the fools, it can’t get us to the way of the truth. It would rather bring us into the pitfall of the worldly pleasure. In such view, the rebuke, revealing our sinful nature, is the very advantage, leading us to the truth.

 

In Verse 6, it says, “For as the crackling of thorns under a pot, so is the laughter of the fool: this also is vanity.”

 

‘As the crackling of thorns under a pot’ shows us a characteristic of a quick process from burning to ashes. It metaphorically shows us our foolishness that we are engrossed with things making us laugh for a while, neglecting the truth. We don’t know it is such foolishness that the laughter, forgetting our reality, born under the judgement of God, is led to the lamentations in the hell.

 

In Verse 7, it says, “Surely oppression maketh a wise man mad; and a gift destroyeth the heart.”

 

A bribe is a way to make one’s greed realized. It is not only our social problem but reality of the relationship with God in faith. Trying to please God for own worldly benefits belong to bribe, which is the reality of the destroyed, not having the mind that we are under the judgement of God.

 

Therefore, the utmost wisdom to us is to hear the rebuke. In other words, it is the blessing that we hear the cross, rebuking us, revealing who we are, leading us to the truth, the Lord. There is no truth in the song of the fools and their laughter. There is no lamentation over themselves. This is not faith but a fake one. I deeply pray that we come to experience the grace of God, leading us to the truth through the rebuke, the Word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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