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8 16:12

(31강) 경외하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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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 7:15-18

전 7:15-18http://onlycross.net/videos/ecc/ecc-071518.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설교>

세상은 인간의 행동을 의와 악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의인, 악한 행동을 하면 악인으로 규정하면서 악인이 되지 말고 의인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말을 얹습니다. 사람들은 또 이러한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소위 의로운 행동을 해서 의인으로 인정받고자 합니다. 의인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신앙 좋은 사람으로는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의와 악을 선택하여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의와 악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면 앞에서의 모든 말은 공허한 말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의와 악을 선택하여 관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의와 악이 인간에 의해 관리될 수 있다면 의인과 악인은 순전히 인간의 선택과 행함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이유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과 악인에 대해 전도자는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15)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의인을 높이고 악인은 경멸합니다. 종교의 세계에서도 복의 대상은 의인이며 악인은 벌의 대상입니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의를 행하는 것을 신앙이 좋은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복 주실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세상 현실이 기대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말처럼 자기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경험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의 실상을 무시하고 인간의 상식과 틀에서만 의인과 악인을 생각하기 때문에 의인은 복 받고 악인은 벌 받는다는 단순 논리만 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이어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16,17)라고 말합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는 것은 착한 일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물론 착한 일을 지나치게 하면 본인에게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주변 사람들도 지나치다며 적당히 하라고 만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도 악한 일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야할까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문제는 또 있습니다. 지나치게 의인 되고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패망하게 하는 것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다 할지라도 의인이 되고 지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게 스스로 패망하는 것일까요? 의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전도자의 말을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33:12절을 보면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의 상식에 의하면 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의인,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악인입니다. 그런데 의인이라 해도 의로운 행동만 하게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 아한 행동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의인과 악인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의로운 행동을 할 때는 의인, 악한 행동을 할 때는 악인으로 변동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기 전의 의로운 행동이 구원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동이 99점이라고 해도 1점의 악한 행동으로 99점의 의는 의로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99점을 쌓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의로운 행동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인이 되고자 하고 악에서 멀어져 악인이 되지 않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노력으로 의를 쌓고 의인으로 인정되어 구원과 복을 얻고자 하는 발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대개의 기독교인들의 의에 대한 생각이 이러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으니 죄를 멀리 하고 의를 행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에 대한 자기의 노력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것이 복과 형통으로 되돌아온다는 기대를 갖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따라서 구원이 우리가 의인되고 악인 되는 것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은 없습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고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를 행하고 악을 행하는 것에서 구원의 조건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구원 받을 수 있을까?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패망하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와 악을 살피는 것은 하늘의 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이 모든 일, 즉 자기의 의와 악을 살피면서 구원을 염려하고 불안 해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기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의의 근거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무엇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23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고 의인 되는 것과 상관없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의로운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악을 행할 때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또한 인간이 할 일이라는 뜻이 되기에 인간을 본래적 악인으로 규정하고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선언한 성경과 전혀 반대되는 생각일 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여호와로부터 온 것을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로부터 오지 않는 모든 것은 가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로부터 온 것만이 참된 복이 되는 것이고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자신이 의인인가 악인인가를 살피는 모든 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행함과 상관없이 여호와로부터 온 의로움으로 의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로부터 온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때문에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의로움 안에 있는 의인인 것이고 이것이 죄에서 떠나 참된 의인으로 머무는 길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의로움으로 의인되는 것에 마음을 둔다면 스스로 패망하는 길에 있는 것이고, 결국멸망하는 의인이라는 어리석은 자로만 남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의와 악에 대한 능력이 없습니다. 악은 버리고 의를 선택하여 의만 행하다가 구원 받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의와 악을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을 부여받은 인간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미 하나님으로 오는 의로 말미암은 구원이 계획되었고 그 계획에 의해 악을 행하고 악인으로 살아가도록 조치 된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악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능을 깨닫게 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늘의 의에 마음을 두고 자신의 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죄에서 떠난 의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하는 모든 것은 죄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만 의가 됩니다. 이 말은 어떤 행동도 죄가 되니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행동에도 의의 의미를 두지 말고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만이 의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한다 해도 십자가에 달리신 주만 의로 믿는 것이 의인으로 인정되는 신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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