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13:53

영성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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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이나 목회자들을 만나면 ‘영성훈련’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영성훈련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실제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영성훈련’을 강조하고 또한 그러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러운 시각으로 보는 사람 중에 하나다. 왜냐하면 ‘영성훈련’이라는 용어에 내포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아성취’를 행하여 달려간다. 자신이 오늘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꿈꾸면서 훈련을 통해서라면 변화된 자신을 이뤄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만약 영성훈련이라는 것이 이런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깨끗하지 못한 인간이 어떤 훈련을 통해 깨끗해지고자 하는 이단적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복음은 ‘영성 훈련’이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위적인 훈련을 통해 깨끗해지고 성화될 수 없는 존재임을 성경이 이미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으면 훈련을 시킨다고 해도 결국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깨끗한 죄인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죄인은 모두가 동일한 죄인이고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영성 훈련을 동원한다고 해도 결국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영성훈련을 통해서 뭔가 변화된 모습이 보여 진다고 해도 결국 죄인의 신분으로 사망에 처할 뿐이라는 것이다.


비록 영성훈련을 통해서 선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굳게 가진다고 해도 결국 부딪히는 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탄식을 하지 않았는가(롬 7:21-25).


사도 바울이 영성이 부족해서 그러한 탄식을 하겠는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속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성훈련이라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잊어버리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노력하고 힘쓰고 훈련만 받으면 죄에서 멀어지면서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것이 십자가의 의를 외면하는 악을 쌓는 것임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다. 소위 영성훈련이라는 것으로 날마다 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령은 성도의 영성을 훈련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보여주기 위해 일하신다. 그러므로 굳이 영성훈련을 하려거든 인간의 죄를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죄를 보기 위해 무슨 훈련이 필요하겠는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모두 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영성훈련은 인간의 죄와 의에 대한 무지의 산물로 보면 된다.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을 동원하여 의롭게 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인해 의롭게 되어짐에 대한 도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결과이며, 인간이 죄성이 이끌어 낸 발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사실 영성훈련이라는 것이나 승려들이 자신의 속을 갈고 닦기 위해 고행하고 훈련하는 것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신자는 자신의 발전과 변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한 채 나아간다.


이러한 신자는 예수님의 의의 종으로 살아가게 된다. 의의 종으로 살기 때문에 의의 열매인 섬김과 희생과 사랑의 흔적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섬김과 사랑과 희생이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라면, 성령은 무용지물이다. 영성훈련으로 욕망이 자제가 되고 죄가 자제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영성훈련이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삶 또한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다면, 성령의 오심은 날마다 나를 사로잡는 육체의 소욕을 지적해서 나로 회개케 하여 결코 자신의 절제와 노력으로 의가 불가능함을 깨닫게 함으로써 탄식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로 데려가기 위함이다.

(2006.10)
* 신윤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1-0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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