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5.08 17:19

(성령 16강) 성령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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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7:54-60http://onlycross.net/videos/spirit/act-07546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설교>

 

본문은 스데반 집사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내용입니다. 스데반은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분이지만 행 6:8절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도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스데반이 반대파에 의해서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거짓 증언으로 고소를 당하고 당시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와서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반대하다는 증언에 대해 반론하는 것이 7장의 내용입니다.

 

 

스데반의 반론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과거에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처럼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예수를 당신들이 죽였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마지막으로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는 말로 끝납니다.

 

 

스데반의 반론으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이를 갈 정도로 분노하게 되고, 그때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절)고 하자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던 공회원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 내용에서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는 내용에 대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성경이 예수님을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으로 증거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직접 보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영광의 자리에 계심을 의미하는 것이지 실제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실제 목격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심을 보았다고 증거하느니 만큼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스데반 한 개인의 환상 또는 경험으로 끝날 수 있고, 아니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보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누구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계시는 것을 실제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것을 실제로 목격한 것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노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스데반이 실제 목격한 것이라면 과연 하늘이 어떤 식으로 열리겠습니까? 우리가 보는 하늘은 그냥 허공입니다. 허공인 하늘이 닫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이 열린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물론 이 내용을 스데반의 체험으로 여기고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본문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 개인의 체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날 뿐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이 열린 것을 봤다면 성령이 임한 성령의 사람들도 스데반과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데반이 누린 은총의 세계를 우리도 알고 그 세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말한 하늘은 우리가 말하는 하늘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가 말하는 하늘은 우주 공간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이 열리는 것을 본 하늘은 우주 공간을 의미하는 하늘이 아닙니다.

 

 

하늘이 의미하는 것은 생명의 나라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 세상, 즉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땅에 속하지 아니했고 땅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생명입니다.

 

 

땅이 품고 있는 것은 죽음이고 저주고 심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땅에 속한 자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래서 죽음도 심판도 없는 생명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봤다는 것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 그 마음이 하늘의 생명의 세계로 가득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하늘의 생명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에 맞으면서도 마음은 편한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스데반에게는 하늘이 열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는 닫혔음을 뜻합니다. 즉 세상의 방식으로 머물지 않고 하늘의 방식으로 세상에 머무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죽음으로 모든 끝납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 삽니다. 가능하면 힘 닿는대로 세상에서의 삶을 연장시켜 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인생 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열린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신자는 이미 하늘의 생명을 본 사람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생명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가장 존귀한 것을 얻었기 때문에 세상 것이 있고 없고 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하늘의 생명과 은총으로 이미 채워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열린 것을 본 성령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편에 서 계심을 보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편에 서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자가 자기 인생을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시는 인생으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믿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수님이 우편에 서 계신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본다는 것은 곧 믿음을 의미합니다. 봤기에 믿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시고 본 것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보게 되는 것이고,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본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 것에 대한 믿음은 삶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스데반에게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인 신자가 하늘을 본다면 자기 인생에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인생은 예수님께 붙들려 인도 받고 있으며 신자는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예수님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신자에게 하늘이 열려 있다는 것은 하늘을 내가 돌아갈 본향으로 바라봄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게 됩니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기에 세상의 것을 오히려 무겁게 여깁니다. 육신의 삶을 위해 곁에 두고 있는 것일 뿐이지, 언젠가는 다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신자에게 자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고 하늘의 생명을 바라보고 소망하기 때문에 하늘 생명이 주어진 것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신자는 땅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에 소속된 자로 세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써 우리를 하늘과 열린 관계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심령은 하늘의 생명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땅을 위해 사는 것이 현재에는 지혜롭게 보여도 마지막의 자리에서 생각하면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세상이 걸어가는 어리석음의 길에 함께 하지 말고 생명의 나라인 하늘을 바라보시고 우리가 돌아갈 본향을 사모하면서 나그네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하늘이 열린 성령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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