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6.26 21:16

(성령 22강) 양자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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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8:15-17http://onlycross.net/videos/spirit/rom-08151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설교>


사도는 신자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이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신자라면 누구나 신앙생활을 잘해 보려고 애 쓸 것입니다.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좋은 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잘못 이해한 채 신앙생활을 잘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잘못된 신앙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는 의도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자 하는 것이 참된 진리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벌을 받지 않고 복을 받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잘 못 이해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잘하고자 하는 의도는 율법을 따르고 실천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현대 교인들에게 좋은 신앙은 율법을 지켜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결국 자기 행위에 붙들리게 되는 것인데 사도는 이것을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에 율법적 행위는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좋은 자녀로 인정되고, 실천하지 못하면 신앙이 없는 나쁜 신자로 전락되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 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종과 주인의 관계입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주인은 종에게 명령하고 종은 주인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만약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에 대한 징계가 주어지기 때문에 종은 주인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주인은 종의 열심과 성실함을 보고 그를 칭찬하기도 하고 상을 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종은 주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주인의 말에는 철저히 복종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실함과 열심을 보고 사랑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사랑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자가 비록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고 해도 자기의 열심과 성실함을 통해서 아버지의 마음에 들고 그로 인해서 칭찬과 상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하나님은 신자를 자녀라는 위치와 신분에 있게 하셨지만 신자가 아들의 신분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종의 자리에서 주인을 두려워하는 종처럼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15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종의 자리에서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자리에서 아들의 신분으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을 받은 신자로써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종의 자리로 이끄는 성령은 없습니다. 그것은 종의 영이지 양자의 영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신분을 누리기보다는 여전히 종의 자리에서 자신의 열심과 행위를 앞세워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아들다움이 율법적 실천으로 말미암아 증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열심히 행하고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는 믿음이고, 그것이 아들로써 할 바를 다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든 성령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실천과 행위가 기준이 되어 아들 됨이 확인되거나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과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히 12:6-8절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들이기에 징계하시고 채찍질 하시면서 진리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징계는 아들에게 무서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을 받은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무엇을 해도 의무감이나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아들로써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기쁨에 의한 행동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에 경쟁과 비판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자로서의 행동이나 삶이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예수님의 피로써 죄가 용서되고 거룩한 아들의 신분에 있게 됨을 믿기 때문에 행함을 가지고 경쟁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면 다만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서로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하나님께 상속받을 것은 영광만이 아니라 고난도 함께 라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해 아들이라는 신분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를 벗어나서 아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아들의 신분에 있게 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을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할 때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왜 어려움이 있고 고난을 받는가?’라면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좋은 일만 주어지고 세상의 복을 누리고 살 것으로 기대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세상에서 편한 삶을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하늘의 진리를 전파하시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가셨지만, 그 길은 철저히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늘의 비밀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세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써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 누리며 편안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명목만 하나님의 아들일 뿐, 실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중심이 된 나의 세상을 살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는 것은 고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역시 예수님과 함께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상속받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떤 고난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삶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양자의 영으로 오신 성령은 신자를 이러한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현실세계에서의 편안함을 복을 증거하고, 그 복을 얻기 위해 율법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성령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로 섬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말에 두려움으로 복종하게 하는 종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 것일 뿐이고, 사도는 그것을 종의 영을 받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상속받는 현실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고 소망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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