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011.08.21 16:06

(교회 4강) 교회와 복음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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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4-15http://onlycross.net/videos/church/rom-011415.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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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설교>

 

사도 바울은 자신을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4절)고 말합니다. 빚진 자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상환해야 할 빚이 있는 채무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상환해야 할 빚은 복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빚을 진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써(고전 9:16) 자신의 존재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존재 근거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시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바로 이것을 사도 바울은 복음의 빚진 자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전도하고 선교하라는 의미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교회가 본문을 말하면서 교인들에게 전도를 강조하고 선교단체 역시 본문을 자신들의 사명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구절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빚진 자라는 말의 의미는 밖에 나가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전도나 선교사를 보내고 선교비를 후원하는 선교의 사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전도나 선교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바울은 그런 식의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기 위해 빚진 자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빚진 자라는 말은 갚아도 되고 안 갚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갚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적 의무에 붙들려 있다는 뜻입니다. 채무 상환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는 법에 의해서 제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을 화를 받지 않으려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다만 신자가 복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 복음을 상환해야 하는 채무 관계에 붙들린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신자는 그냥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왜 존재하게 하시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자신으로 하여금 복음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복음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삶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사가 된다거나 선교사가 되어 먼 외국으로 떠나는 것만이 복음을 위한 삶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한 삶은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복음이 삶의 근거가 되고 정신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신자가 복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복음을 살았기 때문에 복을 받고 하늘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빚진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됩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는다고 해서 칭찬을 받는 것은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9:16,17절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는 말을 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써 당연한 일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가 전도를 개인의 공로로 돌리면서 시상을 하고 복을 받고 하늘에서 큰 상을 받을 신앙적 행위로 선전을 하는 것은 복음에 빚진 자로서의 전도가 아닌 오직 교회의 부흥을 위한 전도로 이용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지금의 현대 교회 안에서 복음은 이미 실종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교회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에 교회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절대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복음공동체인 교회가 복음에 대해 중요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교회로써 복음의 문제는 당연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이기에 복음을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없이 기계적으로 외쳐지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믿는다’라는 말 ‘복음에 빚진 자’라는 말이 어떤 무게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신 적이 있습니까? 이 말들은 교회를 출입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어서 그 의미가 실종되고 모호해진 채 말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상일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됨으로써 사랑의 본질과 그 의미가 모호해지고 실종된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알다시피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알게 되자 복음을 알기 전의 자신의 모든 삶이 죽음 그 자체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은 살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충성한다고 여겼던 그때 그 시절들이 모두가 죽은 자의 헛된 일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알게 된 바울에게 복음은 생명으로 다가옵니다. 죽은 자신을 살리는 생명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서 복음을 알게 하신 것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빚진 자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오늘 복음을 알고 복음을 믿는 복음 공동체로 모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빚진 자라는 의식이 없으면 안됩니다. 빚진 자라는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복음이든 예수든 모든 것을 내 구원을 위한 것으로만 여기게 될 것이고, 이런 사람에게 믿음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복과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만 남게 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합니다. 맞습니다. 신자에게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것이 복음이 주어지고 복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진심으로 깨달은 사람은 인간의 무력함을 알게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사건을 일으키며 진리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복음으로 사는 것을 대단한 수준의 삶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즉 일반적 생활이 아니라 특별한 수준의 생활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으로 사는 것은 특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생활과는 다른 생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가 복음으로 살 때 중요한 것은 복음의 정신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신은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이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죽은 자의 나라인 세상처럼 보이는 힘과 능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자로 사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복음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복음에 빚진 자인 여러분이 상환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런데 빚진 자로서 먼저 생각할 것은 복음 공동체로 모인 여러분의 관계에서 과연 복음이 흘러나오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모인 공동체라면 은혜로 교제하면서 복음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복음 공동체로 모인다고 하면서 복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인간적인 모습만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면, 그러한 우리가 과연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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