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011.12.04 16:06

(교회 16강) 교회와 교제

조회 수 416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몬 1:4-7http://onlycross.net/videos/church/mon-0104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설교>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게 되면 자연히 교제라는 것이 있게 됩니다. 교회 역시 사람이 함께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교제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교제는 세상이 이해하는 교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모임이긴 하지만 그냥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는 신자로 불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보면 교제를 신자가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고 함께 어울려 식사하며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보다 교회에 남아서 함께 식사하며 어울리는 신자의 수가 많을수록 교제가 활발하게 잘 되는 교회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제는 교회 밖의 인간관계에서도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교회보다 더 깊고 친밀감이 있는 교제를 이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교제는 기껏해야 식사를 함께 하며 어울리는 정도겠지만 교회 밖에서는 회식과 함께 술과 노래방 등등 다양한 놀이와 함께 어울리며 친밀감을 쌓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자의 교제가 교회 밖 사람의 교제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는 것도 교제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제의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는 교제의 의미를 찾으신다면 모든 사람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요구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의 교제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에서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교제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한 믿음으로 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처럼 교회라는 관계를 떠나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려고 합니다. 교회 내에 인간적 친분관계가 형성이 되고 이러한 인간적 관계를 따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자의 교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인간관계가 교회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신자의 교제는 단순히 함께하여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고후 13:13절을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성령의 교통하심’은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교통, 즉 교제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이 교제는 단지 인간들끼리의 교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의 관계를 서로 돈독하게 이루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의 교통을 이루시기 위해 보내신 영입니다. 때문에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님의 은혜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게 하여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성령의 교통으로 인해서 생명의 세계에 속한 자로 만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의 교제를 신자의 교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6절에 보면 ‘믿음의 교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빌레몬의 교제가 믿음으로 인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신자의 교제는 성령으로 인한 교통이며 믿음으로 가능한 교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과 상관없는 교회 밖의 세계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독특한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의 교제인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믿음의 교제로 인한 유익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6절에서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로 인한 유익입니다.

 

 

교회 밖에서의 교제는 나의 즐거움이 목적이며 전부입니다. 그래서 내가 즐겁지 않은 교제의 자리에는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자의 교제는 나의 즐거움이 목적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이 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는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우리 힘으로 이런 교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감정이나 친분 관계 등으로 이런 교제가 가능할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교회에서의 믿음의 교제는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교제는 교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가 어떤 것이었기에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게 하였다고 말할까요? 이 역시 사도는 자세히 언급을 하지 않지만 이렇게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당시 비교적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집에 노예가 있었다는 것과 그의 집을 개방하여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 비해 부유했던 빌레몬이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5절). 부유했던 빌레몬이 모든 성도에 대해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의 부유함이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로 나오지 않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믿음으로만 대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초대 기독교인들은 빈부격차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빈부격차로 인해서 있는 자는 있는 자끼리 없는 자는 없는 자 끼리 어울리는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만찬을 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사도의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합니다. 세상 지위의 높고 낮음, 재물의 많고 적음이 다른 계층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로 인해서 신자의 관계가 나눠진다면 그것은 이미 믿음의 교제에서 벗어난 것이 됩니다. 따라서 신자의 교제란 없습니다.

 

 

신자가 믿음의 관계로 모인다면 세상의 그 어떤 차이도 차별이나 구별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지위나 재물로도 나눠질 수 없는 것이 교회라는 관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자는 지체입니다. 이 몸이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나눠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성령의 교통으로 하늘의 생명의 세계를 누린다면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얻은 내 소유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자기 소유를 힘으로 여기며 그 힘을 따라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믿음에서 벗어난 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은혜로 인한 생명의 세계에 속하게 된 것을 최고의 복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형제를 대하는 것이 형제에게 있는 선, 즉 하늘로부터 주어진 복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는 것이 됩니다.

 

 

만약 누구라도 교회에서 세상의 것을 내어 놓게 되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형제로 하여금 생명의 세계를 누리는 기쁨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하는 악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보면 믿음의 교제라는 것은 어떤 방법이나 형식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절에 보면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고 말합니다.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는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을 얻게 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보다는 평안을 얻게 했다는 것은 신자인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은혜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정말 사랑과 은혜를 알고 있는 것입니까? 사랑과 은혜를 알고 믿는 우리라면 우리에게서는 믿음의 교제가 나와야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 교회 (교회 20강) 교회는 그의 몸 신윤식 2012.01.01 4306
19 교회 (교회 19강) 교회와 개혁 신윤식 2011.12.25 4080
18 교회 (교회 18강) 교회와 부흥 신윤식 2011.12.18 4033
17 교회 (교회 17강) 교회와 사회참여 신윤식 2011.12.11 4114
» 교회 (교회 16강) 교회와 교제 신윤식 2011.12.04 4161
15 교회 (교회 15강) 교회와 권징 신윤식 2011.11.27 4027
14 교회 (교회 14강) 교회와 봉사 신윤식 2011.11.20 4009
13 교회 (교회 13강) 교회의 속성 신윤식 2011.11.13 4231
12 교회 (교회 12강) 교회의 정체성 신윤식 2011.11.06 4107
11 교회 (교회 11강) 교회와 직분 신윤식 2011.10.30 4291
10 교회 (교회 10강) 교회와 구원 신윤식 2011.10.23 4062
9 교회 (교회 9강) 교회의 사명 신윤식 2011.10.16 4282
8 교회 (교회 8강) 교회의 일치 신윤식 2011.09.18 4151
7 교회 (교회 7강) 살아 있는 교회 신윤식 2011.09.11 4687
6 교회 (교회 6강) 교회와 세상 신윤식 2011.09.04 4148
5 교회 (교회 5강) 교회와 하나님 나라 신윤식 2011.08.28 4264
4 교회 (교회 4강) 교회와 복음전파 신윤식 2011.08.21 4861
3 교회 (교회 3강) 교회의 사랑 신윤식 2011.08.14 4290
2 교회 (교회 2강) 교회의 비밀 신윤식 2011.07.31 4549
1 교회 (교회 1강) 교회는 신윤식 2011.07.24 5190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