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2011.12.25 13:57

(교회 19강) 교회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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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3:1-3http://onlycross.net/videos/church/ki2-23010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설교>


현대 기독교에서 ‘개혁’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의식과 제도를 뜯어 고친다는 의미의 ‘개혁’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 교회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현대 교회가 지금의 상태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고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뭔가 바른 의식을 갖고 있고,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교회 되는 것이 외적인 형태 즉 어떤 제도와 의식을 고친다고 해서 되는 것일까요? 제도와 의식이란 외적인 것을 뜻합니다. 그러한 외적인 것을 고쳐서 바른 교회가 되어 진다면 그것은 성령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인위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른 교회라는 것이 사람의 손에 의해서 고쳐지고 수정되어 세워질 수 있는 있는 문제인가부터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제도도 아니고 의식도 아닙니다. 즉 그 어떤 형태적인 것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며 이들이 함께 모여서 예수님의 공로를 높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을 교회라고 일컫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교회됨은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믿음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이지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서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도와 형식을 고치면 교회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현대 교회의 여러 가지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가령 담임목사, 부목사와 같은 제도를 성경에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목사에 대한 그런 호칭들은 성경에 없습니다.

 

 

또한 현대 교회 내에서 담임 목사와 부목사의 위치는 현격히 차별되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서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동역자라는 의식은 없고, 부목사는 거의 담임목사의 비서와 같은 존재로 여겨질 뿐입니다. 이런 폐해 때문에 담임 목사 부목사로 나누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목사에 대한 그 같은 제도를 없앤다고 해서 교회답게 되는 것일까요?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세워지지 못하는 것이 과연 바르지 못한 제도 탓일까요? 그렇다면 바른 제도를 도입하여 교회를 운영하면 그 교회는 바른 교회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생각이야 말로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른 제도, 바른 형식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에 교회 운영을 위한 제도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제도도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제도가 바르지 못해서 교회에 여러 가지 폐단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못돼서 나쁜 폐단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위를 봉쇄하기 위해서 위임 목사 제도를 없애고 목사 임기제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제 소견으로는 목사가 성경을 바르게 알고 십자가 정신을 따라 산다면 목사라는 자리를 권위나 권세를 주장하는 자리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로만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사에게는 애당초 위임목사, 담임목사, 당회장 등의 호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개혁은 있어야 하고, 또한 말마다 개혁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혁의 대상은 교회의 제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교회의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은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짐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투성이인 우리 자신이 고침을 받는 것이고, 이 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요시야 왕의 개혁에 대한 내용입니다. 요시야는 아주 모범적인 왕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종교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계기는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던 중 율법서를 발견한 것에 있습니다.

 

 

요시야가 이 율법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후에 장로들을 모으고,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을 성전에 불러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줍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하자 백성들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합니다.

 

 

4절부터 보면 요시야가 행한 종교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있는데, 요시야는 여호와의 전 안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는 데 사용하던 모든 기구들을 치우고 불사릅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활동하여 가짜 제사장과 우상을 예배하던 사람들을 쫓아냅니다. 또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산당들을 모두 헐어버린 것이 요시야가 행한 종교 개혁의 대표적인 일들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떻게 성전 내에까지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기구들이 들어 왔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예배당에 부처상을 들여 놓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부패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성전에 우상을 들여 놓았으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 가운데 말씀이 없을 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교회가 당시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알이나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은 번성과 풍요의 신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번성과 풍요를 원합니다. 이러한 욕망으로 인해서 번성과 풍요를 주는 신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번성과 풍요의 신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아 번성하고 풍요롭게 된다는 기복적인 신앙에 붙들려 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아세라 목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풍요의 복을 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 또한 이스라엘처럼 말씀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현대 교회가 철저히 말씀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이 계시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있을 뿐입니다.

 

 

예배당에 부처상과 같은 우상을 들여 놓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이스라엘보다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이고 여러분이 곧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두고 있다면, 즉 여러분께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다른 것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것은 성전에 우상을 끌어 들인 이스라엘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오늘 우리 자신에게서 일어나야 할 개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개혁은 말씀이 역사하는 현장에서는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말씀 위에 서게 되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옳은 길로 가고자 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길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오직 복음의 길로만 가고자 할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의 도구가 되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목사, 장로, 권사와 같은 직분을 이용하여 섬김을 받고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설사 현대 교회의 제도 아래서 위임목사라는 호칭을 가졌다고 해도 위임 목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온 마음을 둘 것입니다.

 

 

교회된 우리를 개혁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제도가 고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예수님이 가신 길로 가고자 하는 심령으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개혁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을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써 우리 죄를 보게 하시고 회개의 심령이 되게 하셔서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사람으로 날마다 개혁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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