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5.06 13:45

(구원 3강) 구원과 작정

조회 수 423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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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3:47-49http://onlycross.net/videos/save/act-13474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설교>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옳은 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신 것으로 규정하고 바라볼 때 우리의 이성과 상식에 어긋나거나 합리적이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 죽는 일을 과연 하나님이 행하신 옳은 일이라고 순순히 인정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또한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내게 발생한 고통스러운 일들을 하나님의 옳은 일이라고 순순히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인정은커녕 원망으로 반발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옳은 일로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가 구원을 하나님의 선택과 작정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말한 것을 듣고 반박하고 비방을 하였는데 이방인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고 믿게 된 것을 하나님이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이 인간의 선한 의지와 선택을 무시하고 부정한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이지 못하고 인간을 무시한 교리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생, 즉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과 작정으로만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뜻과 선택도 무시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구원 받지 못한 그 책임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으로 되어진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7문을 보면 ‘하나님의 작정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하나님의 작정은 그의 뜻하신 바에 따라 정하신 영원한 목적인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정해 주셨다’고 답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영광 받으심을 위해서 일어날 모든 일을 정해 두셨는데, 하나님이 정해 두신 이 일에 창세전에 자기 백성을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그들을 부르신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창세전부터 자기 백성을 예정을 해 놓으셨다는 것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이미 구원 받을 자와 구원 받지 못할 자를 따로 구별하셨다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앞서 말한 대로 구원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결국 구원 받지 못한 책임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선벌악이라는 원칙에 의해 생각하면 누구든 구원 받지 못한 것은 인간의 책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이 애당초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옥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라면 과연 예수를 믿지 않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이나 작정이라는 말에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작정이라는 말을 일어날 모든 일을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한 것이나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한 모든 일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일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라는 말도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신학자들 가운데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작정 아래 있지만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행한 것이기 때문에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작정과 뜻을 벗어나서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그 작정대로 일하시는 다스림 아래 있다는 말에 어긋나게 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잘 이해를 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작정은 신앙의 절대성과 귄위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절대성과 권위성에 대해 이해를 못하면 신앙은 믿고 싶으면 믿고 믿기 싫으면 믿지 않는 것으로 전락되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모든 문제가 인간의 선택과 의지의 따른 것이 될 것이고 이러한 신앙에 절대성과 권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자만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절대성이고 권위성입니다. 물론 인간은 여전히 악한 본성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신앙의 길보다는 세상을 향한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힘을 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에게 간섭하시고 다스리셔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세상길의 헛됨을 보고 깨닫게 하시고 그 마음을 하나님 나라에 두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하나님 나를 소망하고 주를 믿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하나님의 의지고 행하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에 의한 절대성과 권위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의지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의지는 전적으로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의지이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의지일 뿐입니다. 즉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선을 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작정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믿음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애당초 십자가를 향한 믿음의 길로 가고자 하는 선한 마음 자체가 없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를 믿고자 하는데도 하나님이 작정하지 않아서 믿지 못하고 지옥 간다면 누구책임이냐?’라는 말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무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것을 두고 보신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인간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기준으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자가 믿었다고 해서 인간에게 영생을 주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작정의 영원한 목적으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작정의 목적을 인간 구원에 두기 때문에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 왜 그냥 두고 보셨는가?’라는 의문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작정으로 영생에 있게 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해서 필연코 죄가 드러나야 할 수밖에 없고, 죄를 드러내기 위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시고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것을 두고 보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한 것 또한 하나님의 허용아래 되어진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허용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는 전도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를 믿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누군가를 믿게 하는 것이 전도라면 하나님의 작정과 충돌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의 전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작정한 그 사람을 믿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전도는 설득과 타협이 아니라 선포이고 증거인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복음의 그릇으로 세워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신 자를 찾으시는 작업이 전도인 것입니다.

 

 

46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타협과 설득이라는 방식으로 전도한 것이 아니라 당당한 태도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신자 됨의 권위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된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서 내세우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동일한 처지로 하나님께 부름 받아 나온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작정과 간섭 없이 믿음의 길을 갈 수 없고 영생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나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나를 부르셔서 믿음의 길로 가도록 은총을 베푸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증거하는 신앙의 절대성과 권위성을 잊지 마십시오. 신자로 부름 받고 신앙의 길로 인도 받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무한한 복입니다.
 



  • 이성희 2012.05.09 00:30
    아멘!
    늘 아멘이 되는 목사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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