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5.20 10:26

(구원 5강) 구원과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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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5:4-8http://onlycross.net/videos/save/jen-4504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설교>

 

요셉은 기독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특히 청년집회에서는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셉의 일대기가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신자로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삶으로 인해서 애굽의 국무총리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셉의 성공을 요셉이 꾼 꿈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을 하면서 ‘청년들이여 비전을 가져라’ ‘꿈을 꾸어라’라는 등의 주제 아래 요셉을 예로 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장년들에게는 요셉의 형통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창 39: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종으로 팔린 요셉이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리고 그 집의 가정총무가 된 일이나, 오해를 받아 옥에 갇혔지만 옥에서도 제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자리에 있게 되고, 애굽 왕의 관원을 만나 그들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를 만나 그 꿈을 해석하여 결국 국무총리까지 된 이 모든 과정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되어진 형통의 삶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인간 중심에서 바라본다면 분명 형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형들이 요셉을 애굽 사람에게 팔지 않았으면 요셉은 그저 양을 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요셉이 팔린 것부터가 형통입니다. 애굽 사람에게 종으로 팔렸을 때도 다른 사람의 집에 팔렸으면 국무총리가 되기는커녕 평생 노예로 살다가 죽었을 것인데, 보디발의 집에 팔린 것 또한 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요셉이 운이 좋았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을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따라 끌어가신다는 생각이 아니라 요셉 한 개인의 성공을 위해 꿰맞춘 인생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겉으로 보면 요셉의 인생은 뭔가 꼬이는 것 같다가도 잘 풀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요셉과 같은 형통을 원합니다. 요셉처럼 자신의 인생도 잘 풀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기대하는 형통의 결과는 자신의 성공이기에 형통에 목을 매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의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기를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의 기쁨도 관심 밖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고자 하는 목적도 결국 자기 형통에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인들의 신앙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국무총리가 되어서 흉년으로 인해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 앞에 서게 됩니다. 자신을 팔아 버린 형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습니다. 형들이 예전에 자신을 팔아 버린 그때 그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시험 하게 되고 형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팔아 버린 예전의 형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걱정하고 요셉의 친 형제인 베냐민도 아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자신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놀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절)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의 종으로 팔리고 국무총리가 되게 된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애굽에 보내기 위한 일로 바라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형들이 자신을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애굽에 보내신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해석합니다.

 

 

 때문에 요셉에게는 형들에게 대한 원한이 없었고 원한이 없기에 복수의 마음 또한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을 애굽에 보내기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붙드시고 그 인생을 섭리하신 이유가 야곱 집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크신 구원으로 그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며 이 작정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을 애굽에 보내시고 국무총리가 되게 하시는 그 모든 일을 섭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는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길을 자신의 뜻을 가지고 살아감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같은 자유는 인간에게 허락된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기 매우 곤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나는 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겪게 되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섭리는 우리를 크신 구원, 즉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백성으로 택하시고 부르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작정하심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일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방향으로 섭리되어 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겪게 되도 그것을 불행하고 나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도구 삼아 우리를 생명으로, 하나님의 크신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는 믿음일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돌아보시면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지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어떤 힘에 의해 간섭 받으며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신자라면 그 같은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구원은 이미 확고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고 부르셨으니 어떻게 살아도 구원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해도 우리가 본성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죄를 즐기며 죄의 길로만 갑니다.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는 생명을 향하여 달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천국에 들여보내기 위해 일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은 하늘의 생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실제적 현실입니다. 현재의 형편과 환경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형편과 환경이 어떻든 그 모든 것은 인생의 끝에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현재만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마지막을 보게 되면 불만보다는 현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믿으며 한숨과 한탄보다는 감사와 기쁨이 있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을 믿음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시각은 항상 인생의 마지막의 자리에 서서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에 돈이나 성공이 아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알았고 만난 것에 모든 가치를 두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마음이 높고 완악한 나를 다스리기 위해 수많은 굴곡의 길을 걷게 하신다는 사실에 수긍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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