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6.10 14:05

(구원 7강) 구원의 세계

조회 수 393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 55:1-5http://onlycross.net/videos/save/isa-55010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설교>

 

본문은 마치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손님을 모으기 위해 외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시장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만 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조차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1절)는 것입니다.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것은 포도주와 젖을 돈을 받지 않고 공짜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면 목마르고 주린 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곳은 없습니다. 항상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고 공짜로 제공하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간혹 교회로 이름 모를 여행단체에서 광고편지를 보내는데, 거기 보면 40명의 인원만 모으면 무료로 일일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합니다. 관광버스와 점심을 제공하고 심지어 입장권까지 제공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공짜입니다.

 

 

그런데 밑에 보면 조그만 글씨로 ‘일정에는 지정한 곳에서의 쇼핑 시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물건을 사게 해서 그 이익으로 모든 것을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컷 구경하고 물건 안사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러도록 그냥 놔두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떠도는 불변의 말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 포도주와 젖을 공짜로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세상의 시장 논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장 논리에 장악되어 있는 세상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합니다. 돈이 있어야 먹고 마실 수 있고 또 그것을 당연한 사회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만약 사회가 모든 것을 공짜로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힘들게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일을 하지 않으면 사회의 경제구조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문제는 가치관의 변질입니다. 돈이 있어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 하나의 상식이 되고 삶의 절대적 논리로 자리함으로써 결국 돈이 가치의 중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이 돈에 주리고 돈에 목말라 하며 살게 되는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선지자는 돈 없이 먹고 배부를 수 있는 세계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는 세상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과연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일까요? 돈만 있으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돈에 매이는 것은 어쨌든 돈이 있으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확고한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2절)

 

 

선지자는 배부르게도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고 살아가는 것을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돈에 목말라 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돈으로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배부르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잔뜩 쌓아두고 그 돈을 바라보고 있으면 배부를 것 같지만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루하루 늙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면 많은 돈을 놓고 가야 하는 아쉬움만 커질 뿐입니다. 결국 돈이 우리를 배부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돈과 상관없이 목마름이 해결되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3절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를 위해 영원한 언약을 맺은 나라로써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의 나라입니다.

 

 

이 은혜의 나라에 대해 5절에서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나라를 알지 못하는 나라라고 하는 것은 이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 나라를 소망하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주고자 하는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질 은혜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으로 배부르고, 세상의 권력과 힘으로 만족을 누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에는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을 삶의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 행복이 아니며 참된 만족이 아니라는 것에는 수긍을 하면서도 여전히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은혜의 나라보다는 돈으로 풍족한 세상을 더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혼의 세계보다는 육신의 세계에 더 확실성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세계는 오직 허상일 뿐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허상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세상에 보이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오늘 있다가도 내일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영원합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50년 후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움직이는 육신은 그 때가 되면 한줌의 재로 남을 뿐입니다.

 

 

30년 50년 후가 아니라 내일 당장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몸인데, 어떻게 육신을, 그리고 보이는 것을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세계일뿐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나라이며 구원의 나라입니다.

 

 

이 은혜의 나라는 예수님으로 실현이 되었으며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를 참된 배부름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알게 되고 보게 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가 곧 충만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신자에게 구원의 세계는 말씀에서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가 충만이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충만은 돈이 주는 배부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3절에서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이기에 말씀에 더욱 마음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을 위해 돈은 필요 합니다. 하지만 돈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배부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실현된 일들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말 그대로 우리의 충만으로 오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충만의 세계를 돈을 받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돈이 없으면 교회도 못 다니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구원의 세계를 증거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유지하는 일에 중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시는데 교회는 ‘돈도 바치지 않으면서 복을 받으려고 하느냐?’라는 엉뚱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돈에 환장한 신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실현된 구원의 세계를 보게 하시고, 그 세계가 우리의 충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 구원 (구원 12강) 굳건하게 서라 신윤식 2012.07.22 3994
11 구원 (구원 11강) 실현된 구원 신윤식 2012.07.15 3807
10 구원 (구원 10강) 구원의 절대성 신윤식 2012.07.08 3895
9 구원 (구원 9강) 구원의 경험 신윤식 2012.07.01 3948
8 구원 (구원 8강) 구원의 영 신윤식 2012.06.24 3813
» 구원 (구원 7강) 구원의 세계 신윤식 2012.06.10 3936
6 구원 (구원 6강) 구원과 의 신윤식 2012.06.03 3964
5 구원 (구원 5강) 구원과 섭리 신윤식 2012.05.20 4050
4 구원 (구원 4강) 구원과 표적 신윤식 2012.05.13 3997
3 구원 (구원 3강) 구원과 작정 1 신윤식 2012.05.06 4245
2 구원 (구원 2강) 구원의 확신 신윤식 2012.04.29 4483
1 구원 (구원 1강) 구원이란 무엇인가 신윤식 2012.04.22 5446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