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7.22 13:49

(구원 12강) 굳건하게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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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2:13-17http://onlycross.net/videos/save/th2-02131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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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설교>

 

본문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신자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사도의 감사의 이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셔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것이고, 사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의 감사의 이유를 보면 조금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의 감사의 이유가 특이하다는 것은 사도가 색다른 감사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써 당연한 감사를 잊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있어야 할 당연한 감사인데 워낙 우리가 그처럼 당연한 감사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에 사도의 감사가 보편전이지 않게 느껴지고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감사의 이유는 거의 모두가 개인적이거나 세상의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이 어려울 때 도움이 되거나 힘이 되었기 때문에 감사의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바울의 감사는 개인적 인간관계가 동기가 되어 나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연관된 마음에서 나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옆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단지 인간관계만 생각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옆 사람과 특별히 친분이 있는 관계도 아니고, 나에게 잘해준 것도 없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부름을 받았든, 거룩하게 되었든, 예수를 믿든, 구원을 받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신앙 문제로만 여길 뿐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 문제에는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같은 교회를 출석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적당히 친분의 관계만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계에서 바울과 같은 감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인간적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 관계가 돈독해진다고 해서 교회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인간적 관계가 돈독하게 구축 되어 있다고 해도 사도처럼 저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면 성도의 교제는 단절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적 관계가 바탕이 되어 있기에 비록 표면적으로는 교제가 활발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형제의 부름 받음과 믿음과 구원과 거룩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른 교제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서로 인간적 마음이 아니라 구원론적인 마음으로 연결되고 교통하여야 합니다.

 

 

신자가 이처럼 구원론적인 마음으로 교통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개인적 감정과 판단을 앞세웁니다. 누군가에게 실수와 잘못이 있을 때 그것으로 그의 전부를 판단하고 평가 해버립니다, 그래서 쉽게 ‘믿음이 있다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땠을까요? 바울이 비록 데살로니가 교회의 구원 받음과 영광으로 감사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완벽한 신앙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인간적인 나약한 모습을 보였기에 3장에서 사도가 그에 대한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1장에 보면 사도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박해와 환난을 견딘 것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인내와 믿음을 자랑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처럼 인내와 믿음으로 박해와 환난을 견딘 것을 그들이 구원받은 증표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해와 환난을 견뎠다고 해서 그들이 전혀 죄와 상관없이 살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불안과 염려와 근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나약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나약함을 보일 때마다 구원에 대해 의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사도가 그들의 구원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할 만한 어떤 확실한 증표를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함께 한 성령의 역사와 일하심을 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성령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은 그들이 박해와 환난을 인내와 믿음으로 견디고 서로 사랑이 풍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박해와 환난을 견딘 데살로니가 신자가 대단하게 여겨지겠지만 성령의 일하심을 생각하면 그들을 붙들고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서로에게서 봐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설령 누군가에게서 나약하고 잘못됨이 보이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두고 구원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함께 하시고 일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우리의 믿음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하심에 있습니다. 나 같은 자를 부르시고 백성으로 삼으셔서 성령으로 다스리며 완전한 영광에 이르도록 도우시고 인도 하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이 은총아래 있는 모든 신자는 누구나 구원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은총에서 자신의 구원을 바라본다면 함께 한 신자 역시 같은 은총을 입고 영광을 얻기 위해 인도 받는 형제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적 마음보다는 구원론적인 마음으로 신자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서로 함께 할 때 인간적 마음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내 입장에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려고 할 것입니다. 때문에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사도가 이러한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은 당시 거짓 사도들이 잘못된 재림론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미혹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필요한 것은 참된 복음을 삶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말한 굳건하게 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가 말한 전통은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전하고 가르쳐진 복음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복음이 일관성 있게 변하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복음을 사도로부터 들었고 편지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이 복음을 삶의 기준으로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굳건하게 서는 것이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신자가 성령의 일하심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성령이 역사하시고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신자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자가 사도의 가르친 복음에 굳건하게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령이 활동하신다는 사실은 신비한 현상으로 증거된다기보다는 세상의 미혹과 시험 속에서도 하늘의 생명을 소망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위로와 힘을 얻는 것으로 증거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 있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여러분 자신의 구원이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졌는가를 마음에 두게 됩니다. 개인의 수준이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이며, 나약한 자신이 지금도 주를 믿는 있는 것도 성령의 역사임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의 구원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다른 사람도 동일한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때문에 타인의 행동이나 잘못을 빌미로 비판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심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신자는 구원 받은 자로써 구원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이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굳건하게 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굳건히 서야 할 터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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