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3.11 12:47

(성화 8강) 믿음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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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2:20http://onlycross.net/videos/holy/gal-022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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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설교>

 

신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참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판단하는 일도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정확한 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속에는 미움을 감추고 겉으로는 웃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때문에 비록 겉으로 웃고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그 사람과 내가 바른 관계에 있다고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관계에 의심을 가지고 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보이는 인간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곧 종교행위입니다. 신앙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 즉 헌금, 기도, 성경 읽기, 교회에서의 봉사 등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성경을 읽고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만 말하면 모두가 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구태의연한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과연 어떤 예수를 전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살피면서 바른 복음을 좇으며 하나님과 바른 믿음의 관계에 있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이 자신을 믿음이 아닌 잘못된 길에 방치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무엇이 믿음인가?’를 아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믿음 안에서’의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기독교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현대 교회도 여러 교파로 나뉘어져 있지만 초대 기독교도 복음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인해서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에는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고, 이방인으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데는 차이가 없었지만 율법을 사이에 두고는 서로 일치될 수 없는 차이를 보였던 것입니다.

 

 

유대인 신자는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율법을 주장했습니다. 즉 믿음은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율법은 신자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거룩해지는 길이었고 수단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믿음만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이방인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애당초 율법과 상관없이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믿음의 문제와 율법을 결부시키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신자가 거룩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이러한 차이로 인해서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면서도 하나 된 길을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교회의 형편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화를 말하면서 믿음과 실천을 결부시키며, 신자는 믿음에 의한 실천으로 거룩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대교 신자들이 율법을 붙들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못하는 잘못된 신앙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실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실천은 나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믿음의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신자가 믿음 안에 산다는 증거이고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간섭 아래 있다는 증거인데 믿음의 행위를 자신의 실천으로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의 행위를 자신의 실천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기 행위에 가치를 두면서 그 행위로 말미암아 거룩해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이미 거룩해진 신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시키시고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에 있게 된 것이고, 화목 된 관계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 거룩한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고 우리가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신자는 거룩해지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거룩을 바라보며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자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전한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내용은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믿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내가 산다’는 인식이 박혀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봐도 내가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일하고 살아갑니다. 어느 한부분에서도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할 수 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일하는 그 모든 것이 여러분의 생명의 문제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만약 그리스도 없이 내가 사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의 길은 생명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만 나아갈 것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실천한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된 삶의 길을 바꿔 놓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나의 실천은 주를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면서 믿음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할 뿐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은 나의 믿음으로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의 행위가 나를 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의 행위를 믿는 것이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믿음의 행위와 실천으로 거룩해지자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것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믿음 안에서’라는 말은 신자의 모든 행위와 실천을 무익한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행위와 실천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여기기 때문에 신자가 예수님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라는 사실도 잊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있는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의 가치와 능력과 존귀함을 증거 할 사람으로 부름 받았음을 압니다. 말씀이 신자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며 부끄러운 자로 주께 나오게 합니다. 회개하게 하며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게 하며 그 은총만을 자랑하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 살아가는 신자이며 이러한 신자에게 성화는 자신이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은총의 세계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의 방향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써 어떤 형편에서도 주가 가신 길을 향해 나아가는 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이 커져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리지 마십시오. 많은 신자들이 믿음이 커져야 한다는 강박증 에 붙들려 있는데 신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에 뜻을 두면 됩니다. 믿음이 커지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에 소원을 두시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은혜를 알아가고 은혜가 그 마음을 장악할수록 자연히 삶은 주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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