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2017.02.11 18:53

(믿음 100강) 믿음과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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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9:17http://onlycross.net/videos/faith/pro-191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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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설교>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덕목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선행’입니다. 선을 실천하는 것이 곧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향상되는 것이라고 하고 선행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서 더 나은 인간성을 가진 것으로 차별하기도 합니다. 선행이 있을수록 인간애가 깊은 사람으로 인정되며 선행에 대한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행이 인간의 가치를 향상시켜주기 때문에 종교세계 또한 선행을 가르치고 실천을 요구합니다. 신을 믿고 섬기며 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자로서의 다름의 기준을 선행에 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을 믿는 믿음은 선행, 즉 선한 행실로 증거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누구나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을 선행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선행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어서 여호와가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선행을 그렇게 이해하게 되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먼저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행위가 기독교인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선행만 따로 구별하여 여호와께 꾸어주는 것으로 간주하여 갚아주신다면 그것은 동일한 선행을 행했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복을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기독교인 편이다’는 말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이 갚아 주시고 선행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면 누구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으로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 또한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우리에게 있는 기존의 지식과 상식으로 섣불리 해석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잠 11:24-25절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진다는 것을 대부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구제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풍족하게 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이 여호와께 꾸어주는 것이고, 여호와는 그 행위에 대해 반드시 복으로 갚아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구제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구제를 독려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행으로 여기는 구제를 하면서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롬 14:23절의 말씀처럼 믿음을 따라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가난한 자가 누구인가?’입니다. 사회적 기준에서 가난한 자는 돈이 없어서 생계가 힘든 사람입니다. 그러면 재산이 얼마가 되어야 가난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부에서 해마다 최저생계비를 발표하는데 수입이 최저생계비 이상이면 가난하지 않는 것이고 그 이하면 가난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이 이러한 기준으로 규정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사회적 시각이나 기준으로 이해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돈을 기준하여 가난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등의 모든 문제 또한 성경적 시각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정립되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난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되면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위해 부자 되게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실 뿐이고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가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가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부자 되고자 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을 자신을 위해 일하는 신의 개념으로만 인식하는 것일 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제의 대상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지 않으시면 애굽의 종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셔서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표면적으로는 더 이상 가난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땅이 있고 소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가난한 자일뿐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현실이 하나님의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로 살아가는 것임을 아는 신자에게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계가 힘든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 마음에서 나오는 동정심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세계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리 모두는 가난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피를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면 누구도 구원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재물도 구원의 문제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사도의 말 그대로 배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자들일 뿐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베푸신 피의 은혜로 생명을 누리게 된 것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십자가의 세계를 말씀을 통해서 알아가고 보게 됩니다. 이 말은 말씀이 우리를 가난한 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가난한 실상을 정직하게 보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가난한 자라는 자기 실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때문에 믿으면 부자 된다는 말은 애당초 하나님에 대한 마음은 접어버리고 자기를 위해서만 살고자 하는 욕망의 소리일 뿐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나 같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피 흘려 죽으신 은혜의 시각에서 형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나아 함께 한 지체 역시 예수님의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 아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서는 보이는 것이 기준이 된 차별과 판단이 나와질 수 없습니다. 이처럼 내가 받아 알게 된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구제입니다. 이것을 선행이라고 하기 때문에 선행은 윤리와 도덕이 아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선행을 하나님은 어떻게 갚으실까요? 마 5:7절에 보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이 조건이 되어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김 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게 됨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선행에 대해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은 그를 여전히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불쌍히 여기시며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생명의 길로 끌어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갚아주심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보상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게 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선행도 하나님의 보상을 받은 자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행함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또한 우리에게 갚으셔야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의 여러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으로 모든 것을 받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받은 것 또한 자격이 없는 자에 대한 긍휼임을 알게 되면 긍휼에 의해서 긍휼이 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기에 선행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Chapter 100

 

Faith and Good Deeds

 

He that hath pity upon the poor lendeth unto the LORD; and that which he hath given will he pay him again. (Proverbs 19:17 KJV)

 

(Sermon)

 

One of the virtues taught in the modern society is 'good deeds.' We often hear doing good deeds is to enhance the human value and assume one with good deeds is a better person than one without. The more one does good deeds, the more one is praised by others.

 

Likewise, since good deeds can improve the human value, the worlds of all religions teach and require good works. They weigh good deeds for the difference between believers and non-believers. In other words, their belief can be proven by good deeds. Christianity is not an exception in this sense.

 

The passage says, "He that hath pity upon the poor lendeth unto the LORD; and that which he hath given will he pay him again."

 

Anyone reading the verse will understand that one's having pity upon the poor and helping them is a good deed and lends it to God and God will pay one back. Yet, the understanding causes many problems.

 

First, having pity upon the poor or helping them doesn't belong to Christianity only but to anyone over religions. Thus, if we think God paid back only christians for christians' good works, excluding non-christians', the understanding of the verse is that God would only bless christians even if christians and non-christians did the same things. If so, the statement, 'God is on the side of Christianity', wouldn't be wrong.

 

In addition, the understanding is that if God were to pay back for good deeds and good deeds were to have pity upon the poor, anyone with the pitiful mind would be acknowledged by God. This is not what the Bible teaches either. Therefore, we have to be careful not to interpret the meaning of the verse recklessly.

 

In Proverbs 11:24-25, it says, "One man gives freely, yet gains even more; another withholds unduly, but comes to poverty. A generous man will prosper; he who refreshes others will himself be refreshed."

 

'A generous man will prosper' would seem that God will bless one for one's helping the poor with a pitiful mind, causing us to understand the today's verse that helping the poor with a pitiful mind is to lend God and God will surely pay back for the good deeds.

 

Yet, the intention of the understanding is to insinuate there are no losses but benefits of doing good deeds, thereby encouraging people to do so. This is a sin while doing good deeds because it is not of faith according to Romans 14:23.

 

What we need to think of first is 'who are the poor?' In socioeconomics, the poor are the people who have trouble living due to lack of money. If so, how much is lack of money? Is it lower than the minimum cost of living according to what government says every year? If it's higher, is it not lack of money? Do you think 'the poor' is defined in this meaning by the Word of God?

 

'The poor' in the Bible must be viewed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not in the social aspects because the Bible doesn't differentiate the poor by money. Then, having pity upon the poor and helping them surely need to be understood in the Bible point of view.

 

No one loves poverty. Thus, if one thinks one is poor, one complains to God, assuming one should be rich for oneself. However, God doesn't exist for us. Consequently, He doesn't make us rich, either.

 

God is for Himself and He is the One, making us poor for Himself. The work of God is to fulfill His will by making us poor. Thus, if one wants to be rich, one thinks of God nothing but working for one.

 

In the Old Testament, whom God thought of the poor was the Israelites. They would have been servants of Egypt forever unless God'd had pity upon them and helped them. Yet, God brought them out of Egypt and guided them into the promised land. They were given the land for their inheritance and brought forth the fruit there. Entering the land, they were no longer the poor on the surface because they had the land and the fruit. Yet, in the relationship with God, they were still the poor because they were living daily in the grace of God.

 

Therefore, having pity upon the poor is only possible in the right relationship with God because one can have pity upon the poor when one is aware that one is living by God's having pity upon one. Thus, our having pity upon the poor is nothing more than our sympathy with them for their poor condition.

 

If we take a look at ourselves at the cross, we are all the poor because no one would be saved unless Jesus had shed His blood. Mammon, which we all wish to have, is useless for our salvation. According to Apostle Paul, it is nothing more than rubbish. Thus, we are all poor, possessing nothing, and come to enjoy life under the grace of the blood by Christ's having pity upon us.

 

We can learn such world of the cross through the Word of God, which means that the Word of God makes us poor. It doesn't mean it takes our richness from us to make us poor, but to open our eyes to see our reality, the poor, from the beginning. Thus, we can say that it is faith that opens our eyes to see who we really are. 'You will be rich if you believe in God' ignores the will of God and is a mere desire to live only for oneself.

 

Our having pity upon the poor is for us to see brethren in the mind that the Lord had pity upon us and died for us in His grace. As we can't live without His grace, having pity on us, we are to believe that brethren are under the same grace, having pity upon them as well.

 

In such faith, there can never be any judgement nor differentiation by what is visible. It is the true meaning of helping the poor that we share the grace and love we have received from God. It is called good deeds, which are not moral or ethical deeds, and impossible for non-believers.

 

Then, how does God pay back for good deeds? In Matthew 5:7, it says,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It doesn't mean one must show mercy to others to receive blessings as a requirement, but it means that one, knowing one is in mercy, can show mercy to others.

 

God's paying one back for one's good deeds of having pity upon the poor is to continue for God to have pity upon one. It is God's paying back that God has pity on us and holds us in His hand and guides us on the path of life until the end of the world.

 

According to what has been said above, all believers live doing whatever they do in His already-given awards. Having pity upon the poor is also a good deed under the same condition. Thus, there is nothing believers need to be paid back, and God has nothing to pay us back either.

 

Imagine yourself out of Christ. And then, you will realize that you have already received everything by coming to know who Christ is. When you know you have received it by his mercy even though you don't deserve it, you will show mercy by the mercy of God. Since it is faith, we can proclaim good deeds are not works but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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