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2017.02.25 17:42

(믿음 102강) 믿음과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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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 1:4-7http://onlycross.net/videos/faith/pe2-0104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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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설교>

성경은 언약으로 시작해서 언약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언약은 미완성의 상태에서 완성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성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사건을 언약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은 아직 언약이 성취되기 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약은 미완성에서 시작하여 완성으로 나아간다는 말도 가능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언약의 성취가 불분명할 때 통용되는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언약의 완성이 인간이 이루어야 할 사명으로 주어졌다면 언약의 성취는 불분명합니다.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언약은 불분명한 미완성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완성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언약을 하신 분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시고 이루신다면 언약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셨다는 것 자체가 성취, 완성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언약으로 시작하여 언약으로 끝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완성하신 언약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간의 믿음이나 위대함이 증거 될 수 없습니다. 증거 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위대하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죄로 인해 죽음의 존재로 전락한 인간을 택하여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 증거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자비의 속성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자신의 죄와 불의를 보게 하시고 그 모든 것을 용서하신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신성한 성품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성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말합니다. 신의 성품이라면 분명한 사실은 인간으로부터 나와질 수 없는 성품이라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평생을 수도하고 노력하고 애쓴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 자신의 성품을 신의 성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적으로 좋은 성품으로 인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타인을 배려하는 것, 양보를 잘하는 것,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 등등의 성품을 좋은 성품으로 여기며 기독교인은 그러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성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긴 합니다. 배려도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성품보다는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성품이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 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신자다움을 보여주는 성품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상관없이 사람에 따라 누구에게서나 가능한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5-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대개 신의 성품을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으로 규정하여 이러한 성품을 가져야 할 것처럼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품성훈련학교라는 것을 만들어서 마치 신의 성품이 훈련을 통해 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하는 것도 볼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은 본문의 내용을 곡해한 결과일 뿐입니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연 인간의 성품이 신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일이 가능한가?’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신의 성품에 대한 내용은 우리가 신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4절의 마지막을 보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가 아니라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적을 두시고 이루실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문의 성품을 차근차근 단계별로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성품의 처음으로 믿음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덕의 성품을 이루고, 다음에 지식을 이루고, 그 다음에 절제를 이루어 가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신의 성품을 이루어 갈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단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조차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힘으로 가능하거나 통과할 수 있는 단계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신의 성품 중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성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신의 성품을 실천할 수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믿음은 우리가 실천할 수 없는 것을 실천하게 할 의도나 목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을 가진 자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은 우리의 불가능성을 보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믿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4절의 말씀을 보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는 말씀 앞에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주신 취지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 세상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그 어떤 구원도 신의 약속이라는 방식으로 시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구원 방식은 인간의 행위가 기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그 기준에 의한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죄로만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구원이 불가능하고 오직 저주와 심판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건져내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약속을 믿는 믿음은 ‘나는 구원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 의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믿음이 있는 신자가 실천해야 하는 문제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의 성품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에 나타난 성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품을 우리가 실천할 수도 없지만 굳이 실천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성품을 실천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믿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신의 성품을 보이셨지만 세상은 예수님을 외면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신의 성품을 실천하자는 속뜻은 지금 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 되자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의 성품을 실천하여서 좀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인간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썩어질 것만 추구하는 인간의 정욕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나 같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주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수인 나를 저주에서 건지시기 위해 피 흘려죽으신 것이 예수님의 덕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에 의해서 타인과 믿음을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지도 않게 됩니다.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됨으로 나타나는 흔적이고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실천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자연적 발생임을 주지해야 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대한 눈에 열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의 가능성을 포기하며 예수님의 이루심만 높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 것이고, 그로 인해 신의 성품이 비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Chapter 102

 

Faith and Nature

 

Whereby are given unto us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that by these ye might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And beside this, giving all diligence, add to your faith virtue; and to virtue knowledge;

And to knowledge temperance; and to temperance patience; and to patie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charity. (2nd Peter 1:4-7 KJV)

 

(Sermon)

 

The Bible begins with the covenant and ends with covenant. We should also remember that the covenant is already complete from the beginning, not incomplete to complete.

 

We say the coming of Jesus Christ is the fulfillment of the covenant. In this sense, before He came, the covenant was not yet fulfilled. Thus, it could be said that the covenant is incomplete to complete.

 

Yet, it would be possible only if the fulfillment of the covenant were not sure. For example, if the completion of the covenant had been given to men as a mission, the fulfillment would have been unclear. It would rather have been impossible, actually. Only in this case, could we say the covenant would be incomplete to complete.

 

Yet, God is the One, who is the Maker and Finisher of the covenant. When He builds the covenant and fulfills it, there is no failure. That is, the fact that God established the covenant itself means the completion and fulfillment. Therefore, that the Bible begins with the covenant and ends with the covenant is understood that the Bible shows us the world of the covenant that God has completed. Thus, faith and greatness of men can't be testified in the Bible, but those of God.

 

The greatness of God is testified that He makes the men, dead by sin, the partakers of the holiness by His election because it is what only God can do by the nature of His omnipotent and grace and mercy. Furthermore, God is great that He makes the men, self-centered, look at their sin and unrighteousness and live as testimonials of His grace of forgiveness by sending the Holy Spirit.

 

In Verse 4 of the passage, it says, "Whereby are given unto us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that by these ye might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The divine nature is not morally excellent character but the nature of God. If so, it can never be from us at all. In other words, there is absolutely no possibility for us to change our nature to divine nature no matter what we do and how long we try to do it.

 

In fact, there are good natures socially accepted. Being thoughtful for others, yielding, and helping the poor are some examples of the natures and many christians would like to have them.

 

Of course, we need to have them. It is true that thoughtfulness is praised and welcomed by others whereas selfishness is detested. Yet, we can't say believers should be characterized by them because those can be shown by anyone regardless of faith.

 

In Verses 5 to 7, it says, "And beside this, giving all diligence, add to your faith virtue; and to virtue knowledge; And to knowledge temperance; and to temperance patience; and to patie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charity."

 

We can see that some people teach the divine nature is characterized by faith, virtue, knowledge, temperance, patience, godliness and brotherly kindness, based on the verses. There is even a place called 'Character Training School', which shows as if the divine nature were developed by human training, which is totally non-sense and the result of the misunderstanding of the passage.

 

What we need to think of first is, 'can our human nature be changed to the divine nature?' As mentioned earlier, it is impossible. Thus, we have to conclude that we mustn't interpret the passage we should have the divine nature.

 

Above all, we ought to pay attention that the latter part of Verse 4 doesn't say, 'you should be a partaker of the divine nature', but 'you may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NIV).' The phrase, 'may participate', means that God has His will in us.'

 

Others say the passage shows the stages of what we need to achieve time to time, saying the first is faith, so virtue is made based on faith and then knowledge, then temperance and so on.

 

If so, what stage do you think it's possible to achieve? Thinking that even faith is not possible for us to have on our own, there is nothing we can achieve, which means there is none that can be our nature in the divine nature.

 

It might be thought that if we have faith, we could practice the divine nature, but faith is not given to us to enable us to do something impossible. In other words, the purpose of faith is not to make us be in the divine nature. We should know faith rather makes us see our impossibility and believe in what Jesus Christ has done.

 

In Verse 4,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is written before 'you may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which means that the purpose of God's giving us the promises is to make us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That He gave us the promises means that the way of salvation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world because there is no salvation in the world executed by covenant. The way of salvation in the world is done by human works. Yet, it is impossible in the world of God because all human works are evil before God.

 

The covenant of God comes to such sinners like us who deserve nothing but curse and judgement of God as saving grace and love. That's why faith, believing in the covenant, begins with the confession, "I don't deserve to be saved." In such faith, we may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We think the passage is hard for us because we approach it as what we have to do. Yet, the divine nature is, as expressly written, the nature of Jesus Christ. The nature is revealed to the world by the death of Jesus Christ, who came to the world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Then, what indeed is the reason we have to practice and train His nature, which we can't? Would one, who doesn't believe in Him, be able to believe in Him by training His nature? We ought to remember that the world rejected Him even though He showed His nature to the world by dying on the cross.

 

Training for the divine nature is nothing but to pursue to be a better person, not being grateful for whatever is given to us now, which is to pursue the corruption in the lust of the world.

 

One's participating in the divine nature means that one is thankful for the grace and love of Jesus Christ, who died on the cross, shedding His precious blood, to save one and believe in Him. Thus, believing in the value of His blood and thanksgiving for His grace is to be a partaker of the divine nature.

 

In such, one never compares nor competes with others because one knows who Jesus Christ is in faith. One never puts oneself superior to others, either. This is the evidence that one is a partaker of the divine nature. Yet, we mustn't forget that it is not by our practice nor works but natural fruit by faith.

 

To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means to open our eyes to the world of Jesus Christ, who has saved us. Thus, it is to discard our possibility and glorify His name only. This is what th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are supposed to do, by which the nature is shone to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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