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4.29 13:00

(구원 2강) 구원의 확신

조회 수 448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히 6:9-12http://onlycross.net/videos/save/heb-0609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설교>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신자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현실은 의심과 회의와 불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구원 받은 이후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죄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며 ‘내가 과연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내가 과연 천국 갈 수 있는가?’라는 의심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으로 여기며 어떻게 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죄 문제로 인한 고민이 또 다른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 문제가 신앙의 중요한 내용으로 부각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왜곡입니다.

 

 

현대 사회의 세속화와 혼돈은 신자를 구원에 대한 더욱 깊은 불안으로 끌어가고 그럴수록 구원에 대해 더욱 강한 확신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신자가 확신을 가지는 문제에 집착을 하기도 하지만 이 집착이 자칫 감정이나 체험을 의존하는 확신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에 대한 왜곡입니다.

 

 

실제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위적 감정이나 특별한 체험을 의존하여 구원을 확인하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을 체험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수시로 변하며 체험은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원을 감정의 느낌과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고 확신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신의 문제에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확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주어진 약속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주관적인 체험(느낌)을 믿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체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비교해 볼 때 참으로 무너지기 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체험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월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의 기적으로 수시로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것은 체험에 근거한 그들의 믿음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와 긍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었던 놀라운 기적의 체험은 겨우 먹고 마시는 문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은 우리의 내부의 문제도 아니고 외적인 체험 문제도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우리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의 구원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처럼 타인의 구원에까지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알았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은 10절부터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그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으로 성도를 섬기시는 분으로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약속을 이루실 것을 맹세하신 분으로 말합니다.

 

 

히 6: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안위가 되며 영혼의 닻과 같은 튼튼하고 견고한 확신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됨으로 인해 구원의 확신은 더욱 굳건하게 자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영혼이 그리스도께 인도되고 있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영혼을 세상으로부터 돌이키게 하시고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의 일입니다. 이 기적을 무시하고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거룩한 피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한 피를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의 나라에 속한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기에 신자의 구원은 약속 안에서 확고 불변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구원에 대해 의심하고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약속을 중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이 자칫 죄에 대한 방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염려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신앙생활을 자신의 의지와 열심에 달린 문제로 여기는 무지일 뿐입니다. 신자는 자기의 의지와 열심으로 믿음의 길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함께 함으로써 다스림 받으며 그리스도를 향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신자는 신자의 본분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높이고 찬송하는 일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죄에 대한 방종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실감하면서 십자가의 피로 인한 그리스도의 구원에 더욱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위한 예수님의 활동입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시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과연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내며 저주에 밀어 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 어떤 강한 세력도 하나님의 약속을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는 있지만 구원은 변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임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죄를 확인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더욱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구원의 확신에 머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이 나의 의지와 행함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문제라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구원을 이루셨는가를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기희생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을 근거로 우리를 거룩한 자로 여기시고 구원하셨는데 또 다시 우리의 행함을 근거로 우리에게 복주시고 구원하신다면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희생을 헛된 것으로 무너뜨리는 결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멸망이 오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끝까지 죄에게 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며 구원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 죄에 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확고한 의지나 체험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택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불안 대신 확신에 있게 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 구원 (구원 12강) 굳건하게 서라 신윤식 2012.07.22 3994
11 구원 (구원 11강) 실현된 구원 신윤식 2012.07.15 3807
10 구원 (구원 10강) 구원의 절대성 신윤식 2012.07.08 3895
9 구원 (구원 9강) 구원의 경험 신윤식 2012.07.01 3948
8 구원 (구원 8강) 구원의 영 신윤식 2012.06.24 3813
7 구원 (구원 7강) 구원의 세계 신윤식 2012.06.10 3936
6 구원 (구원 6강) 구원과 의 신윤식 2012.06.03 3964
5 구원 (구원 5강) 구원과 섭리 신윤식 2012.05.20 4050
4 구원 (구원 4강) 구원과 표적 신윤식 2012.05.13 3997
3 구원 (구원 3강) 구원과 작정 1 신윤식 2012.05.06 4245
» 구원 (구원 2강) 구원의 확신 신윤식 2012.04.29 4483
1 구원 (구원 1강) 구원이란 무엇인가 신윤식 2012.04.22 5446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