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6.24 13:14

(구원 8강) 구원의 영

조회 수 380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욜 2:28-32http://onlycross.net/videos/save/joe-02283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설교>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많은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주로 듣게 되는 것은 은사와 치유, 능력적인 면에 대한 내용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성령 받음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가 성령의 역사로 말하는 은사나, 치유의 일이 기독교에서만 나타나는 고유 현상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교회가 성령에 대해서 말하려면 성령을 받지 않은 세계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구원의 영입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영이 신자에게 함께 하고 역사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요엘서를 배경으로 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32절에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대로 한다면 구원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한 참으로 쉬운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구원이 가장 확실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있어서 이스라엘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1절을 보면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경고가 주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에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그러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들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를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여호와를 아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으니 성령을 구원의 영이라고 일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알게 하는 여호와는 누구실까요? 그리고 신자는 어떤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3절에 보면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비를 내리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실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셨다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까?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은 비가 아쉬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1:20절에 보면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가뭄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가뭄이 있다는 것은 양식이 고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형편에 있는 이스라엘이 비를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신다면 그것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2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알고 있고, 또 이런 하나님을 원할 것입니다. 누구나 병들었을 때 병을 고쳐주는 하나님을 부르고, 고통과 어려움에 있을 때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부릅니다.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되는 복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것을 성령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1절에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가 해체되어 사라질 종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종말이 시각에서 바라볼 때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요엘 선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셔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밀이 가득하고 포도주가 넘치게 하셔서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면 우주가 해체되어 사라지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복주시고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26절에 보면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합니다.

 

 

이 말 대로 하자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수치에서 건지시고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건져서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비참한 자리에서 건지셔서 자기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주가 해체되는 종말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종말과 함께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원한 고통과 비참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같은 고통과 비참함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셔서 영원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이고 나로 하여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신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28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장래 일’‘꿈’‘이상’의 공통점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장래 일도 볼 수 없고, 꿈도 볼 수 없고, 이상도 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볼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남종과 여종에게도 영을 부어주신다면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세상의 조건과는 상관없는 것임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를 꿈꾸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풍요는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을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영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이는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전혀 새로운 갈망이 있게 됩니다. 어떤 갈망일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러한 갈망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것은 보이는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 구원의 영이 임했는데 구원의 세계를 보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세계는 현실의 풍요와는 무관합니다. 구원의 세계는 세상의 종말에서 우리를 건지셔서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보여주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구원의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비록 세상 것으로는 풍요롭지 못하다고 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긍휼과 은혜로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를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의 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니다. 여러분을 구원에 이르게 하신 그 이름을 부르게 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 구원 (구원 12강) 굳건하게 서라 신윤식 2012.07.22 3990
11 구원 (구원 11강) 실현된 구원 신윤식 2012.07.15 3803
10 구원 (구원 10강) 구원의 절대성 신윤식 2012.07.08 3888
9 구원 (구원 9강) 구원의 경험 신윤식 2012.07.01 3940
» 구원 (구원 8강) 구원의 영 신윤식 2012.06.24 3807
7 구원 (구원 7강) 구원의 세계 신윤식 2012.06.10 3930
6 구원 (구원 6강) 구원과 의 신윤식 2012.06.03 3960
5 구원 (구원 5강) 구원과 섭리 신윤식 2012.05.20 4043
4 구원 (구원 4강) 구원과 표적 신윤식 2012.05.13 3992
3 구원 (구원 3강) 구원과 작정 1 신윤식 2012.05.06 4233
2 구원 (구원 2강) 구원의 확신 신윤식 2012.04.29 4476
1 구원 (구원 1강) 구원이란 무엇인가 신윤식 2012.04.22 5435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