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7.01 17:28

(구원 9강) 구원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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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14-21http://onlycross.net/videos/save/act-02142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설교>

 

신자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구원에 대해 확신이 가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구원에 확신이 있을 수 있지만 신앙생활이 게으르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이런 내가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자기 구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를 바라봄으로써 나타나는 심리적인 문제일 뿐 성경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구원은 우리의 신앙생활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원 받은 증표를 우리 자신에게서 확인할 수 있고, 그것으로 구원의 문제를 점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 받은 신자답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지 구원의 여부를 판단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한 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인간인 것은 아닙니다. 택함 받지 못한 사람과 동일하게 죄 가운데서 불의한 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한 인간을 택하셔서 영원한 생명에 속하게 하시고, 생명에 속한 자답게 그 마음을 생명의 길로 향하게 하시고 걸어가도록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일하심을 제대로 아는 신자라면 자기를 바라보면서 구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 없이는 결단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일하심과 간섭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의지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시각이 있다면 신자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다고 하면 대개 신비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거나, 방언을 한다거나, 꿈에서 천사 또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구원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구원은 그런 식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14-36절까지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읽어 보면 그 중심 내용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다윗이 주로 일컬은 바로 그 분이시며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고 예언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귀에는 베드로의 설교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아마 여러분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내용과 다르지 않은 당연한 사실로 들릴 것입니다. 당연한 사실로 들으신다면 베드로의 설교는 여러분께 충격적인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으며 마음의 찔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마음이 찔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이 아니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은 지 이천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들은 예수님을 죽인 일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없으며 구원의 길을 간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예수님을 죽인 일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십자가는 마음의 찔림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베드로가 말한 회개와도 거리가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40절에 보면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라고 말합니다. 패역한 세대란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서 악하다고 하고 패역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악함과 패역은 윤리와 도덕을 기준으로 한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행동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악함과 패역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행위일까요?

 

 

베드로가 말한 패역한 세대라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부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패역한 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함으로써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의 찔림으로 다가오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를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신자가 경험할 수 있는 구원은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말대로 말씀이 내게 마음의 찔림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찔림이 있게 하기 위해서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찔림을 받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피가 나의 죄를 용서했음을 믿으며 감사하는 것이 구원의 경험입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라면 이러한 구원 경험이 반드시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합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은 모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연관된 것입니다. 예언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증거하고 있고 환상과 꿈도 보이지 않은 다른 세상과 연관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에 소망을 두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말을 인용한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 나타난 방언 현상으로 인해서 놀라고 당황해 하며 또 새 술에 취한 것으로 조롱한 사람들을 향해서 방언의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21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것은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두게 하며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되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언이고 방언이며 설교고 전도인 것입니다. 주를 알게 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을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목적으로 삼게 하는 것이 성령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고백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것이 곧 구원 경험인 것입니다. 하지만 말한 대로 이것을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신자의 길로 가기 위한 자기 점검의 의미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의 능력에 붙들려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예수를 믿어주고 교회를 다니는 차원이 아니라 겨자씨 한 알 만 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지고,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뽕나무가 그 말에 순종하게 되는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세계를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믿음의 능력을 과연 얼마나 경험하고 실감하며 살아갑니까?

 

 

다시 말하지만 신비한 현상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신앙은 본질에서 벗어나서 교회가 요구하는 것에 기계적으로 맞춰 살아가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교회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으로 만족해 할 뿐입니다.

 

 

때문에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아도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영생으로 인한 기쁨도 없습니다. 아예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 받은 신자로 구원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과연 구원의 길에서 여러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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