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1.08 13:39

(성화 1강) 신자의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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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4:3-6http://onlycross.net/videos/holy/th1-04030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설교>


기독교에서 성화에 대한 교리는 구원의 문제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고 구원 받은 신자가 점차 거룩한 인격으로 자라가고 완성되어 간다는 교리입니다. 이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화는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문제이며, 구원의 증거 또는 구원의 열매로 성화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사실 여러모로 생각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성화는 당연한 듯 여겨집니다. 신자는 구원 받은 자이고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구원 받기 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뭔가 변화되고 나아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점차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있어야 성령이 역사하는 신자답게 보이고 믿음의 열매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생각 안에서 성화 교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적 시각에서 볼 때 한국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성화에 대한 내용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과연 성화를 말하고 있는지, 성화를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의 성화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현대 교회가 보편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성화가 과연 가능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화를 교회가 주로 가르치는 것처럼 선을 실천함으로써 거룩한 삶을 이루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롬 3:10-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는 내용과 부딪히게 됩니다. 이 같은 말씀은 시편 14:1절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도 바울의 말은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이방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선은 믿는 자만 행한다는 뜻이 되는데 여러분은 이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세상이 이해하고 있는 선을 기준으로 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선은 얼마든지 행해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에도 도덕적 기준에서의 선은 얼마든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이 도덕과는 그 개념이 다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선을 실천하는 것은 신자의 거룩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따라서 성화와도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분노나 미움, 시기, 자존심의 문제는 인간이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잠시 억누를 수는 있지만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건과 상황에 맞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와 미움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자존심 문제로 인한 다툼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동안 애썼던 성화는 실패했다는 것이 되는데 이 같은 경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정말 성화를 이루어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외적인 행동의 변화만으로는 안되고 본성 자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분노와 미움, 시기, 자존심의 문제는 모두 본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본성이 변화될 수는 없습니다.

 

 

성격이나 기질은 변화 될 수도 있겠지만 본성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열심히 선을 실천하고 스스로 변화되려고 애를 씀으로써 이루어지는 성화는 성경적인 시각에서 보면 맞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은 신자에게 있어야 할 성화적인 삶의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 여러 성경 구절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경 구절들이 과연 성화적인 삶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합니다.

 

 

 신자의 거룩을 요구하는 구절은 성경에 많습니다. 레 11:45절에서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하고, 벧전 1:16절에서도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더구다나 벧전 1:15절에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신자의 모든 행실이 거룩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는 것이 곧 성화될 것을 요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 과연 도적적인 착함, 선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거룩한 행실이 도덕이나 윤리와 연관된 것이라면 앞서 말한 것처럼 믿지 않는 자들의 도덕과 윤리적인 삶도 거룩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 모순이 있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는 신자의 거룩을 음란을 버리고 거룩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대하고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않고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가 말하는 거룩의 삶은 겉으로 보면 마치 도덕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음란이나 색욕,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들은 외적으로는 도덕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가 말하는 거룩의 모습에서 소위 좋은 성품이나 좋은 기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연 사도는 어떤 의미에서 음란을 버리고 거룩과 존귀로 아내를 대하고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을 거룩한 것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당시 데살로니가는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이 많았으며 신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제사이 한 부분으로 신전에서 일하는 여인과의 성적인 관계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신전에서 여인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그들에게는 음란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할 때 다른 여인과 관계를 맺는 생활도 버렸을까요? 다른 여인과 관계 맺는 것을 음란이라는 죄로 여겼다면 그런 생활을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말한 대로 전혀 음란이라는 죄로 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쾌락으로 여겼기 때문에 예수를 믿은 후에도 그런 생활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가 음란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즐거움 자기 쾌락을 좇는 세상에 속한 자의 옛 생활을 버릴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가 말하는 거룩은 도덕적 삶의 실천이 아니라 세상 방식에서의 구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의 삶이 자기의 즐거움과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다면, 새 사람으로서의 신자의 삶은 나의 뜻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과 뜻에 나의 소원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는 거룩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대하는 것이나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들 역시 단지 아내에게 잘 해주라거나 형제에게 나쁜 일을 행하지 말라는 단순한 의미라기보다는 내가 아닌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구별된 삶의 방식이며 이처럼 구별된 길을 가는 것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행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신자가 세상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고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진심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가장 존귀한 은총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삶을 살고자 소원하는 것이 거룩이며 이러한 거룩을 성화라고 한다면 ‘성화는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야 할 성화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증거되는 성화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여 내셨고 생명에 속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신자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것은 구별의 모습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거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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