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3.04 21:19

(성화 7강) 새 생명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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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6:1-4http://onlycross.net/videos/holy/rom-06010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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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설교>

복음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에 모든 가치를 두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지만 인간은 예수님을 믿는 자신에게도 가치성을 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게 되면 ‘그러면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면 된다는 것인가?’라는 반발을 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루셨고, 지금도 예수님이 살아서 그 뜻을 이루시고 계시고 인간은 예수님이 이루시는 일을 증거하는 도구로 존재한다는 복음의 내용은 분명 모든 일을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이루신 주를 바라보라는 것이 복음의 내용인데, 이러한 내용들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예수만 바라보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만 바라보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마치 인간을 무시하는 것 같은 의미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믿음을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섬기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힘닿는 대로 열심히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곧 믿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이나 ‘예수만 바라보라’는 말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말이라고 하면서 불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부르신 이유가 신자를 통해서 뭔가 하시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로써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신자 되게 하신 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써 해야 할 일, 즉 사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의 사명을 우리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자의 사명을 우리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에 더 비중을 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신자가 하는 일을 더 가치 있는 것과 덜 가치 있는 것으로 차별하고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의 관계 밖에서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이미 거룩과 깨끗함이라는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신자 됨은 가치 있는 일을 행함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있습니다.

 

 

 죄인 된 인간이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적 인간으로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됩니다.

 

 

4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신자가 주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 앞에서 자신을 죄로 인해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주와 함께 장사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와 함께 다시 산자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 생명 가운데 거하게 된 신자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새 생명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새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새 생명은 이미 정상에 올라 있음을 뜻합니다.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는 것이 신자가 아니라 이미 정상에 올라 있는 사람으로 정상에서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고 증거하는 것이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이 됩니다. 정상에 올라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은총입니다. 이 은총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정상에 오른 자의 행함인 것이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등산 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감격을 누리는 자리는 정상입니다. 정상에 올라서 앉아 쉬든, 커피를 마시든, 춤을 추든,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동일할 것이고 정상에서의 감격 또한 동일합니다. 이것이 주와 함께 살리심을 입고 새 생명을 누리는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 가운데 거하게 된 신자로서의 기쁨과 감사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가만히 앉아 있든, 무엇을 하든 신자로서의 기쁨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성화의 삶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에 오른 자로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있는 삶이 곧 성화의 삶입니다. 거룩해지기 위한 삶이 아니고,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나 같은 자를 거룩이라는 정상에 올려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마음에 살아 있어서 그로 인해 기뻐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거룩한 자로 살아가는 성화의 삶입니다.

 

 

때문에 성화의 삶을 사는 신자는 자신을 바라보며 실망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감사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을 채우려고 힘쓰기 보다는 나의 부족함에 채움이 되시고 충만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도 ‘구원을 얻었으니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가?’라고 반발하는 것은, 신앙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 있는 신자는 새 생명가운데서 행할 것이 있습니다. 도무지 새 생명이라는 은총의 세계에 속할 수 없는 나 같은 자를 새 생명 가운데 있게 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든 선교를 하든 구제를 하든 그 모든 일들은 오로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단지 그릇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담아서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고 전달해야 할 그릇인 것입니다. 가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기 때문에 그릇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며 그 행함 또한 믿음의 행함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빌 2: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이 마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힘쓰라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써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왜 그들에게 ‘구원을 이루라’는 말을 할까요? 사도는 ‘너희가 잘못하면 구원이 취소 될 수 있으니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하여 구원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구원은 참으로 크고 놀라운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아들의 고난과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구원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이고 기적의 사건입니다. 때문에 구원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구원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는다면 구원 얻은 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 놀라운 축복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구원을 얻은 자답게 사는 것이며, 이것이 사도가 말한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 다운 삶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고정시켜 놓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고 성경 보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 등으로 구원 받은 자 다운 삶을 고정시켜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구원이라는 복의 가치를 알고, 진심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구원 받은 자 다운 삶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가 우리를 강권하면서 봉사하게 하고, 헌신하게 하고, 구제하게 하고, 선교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지향하는 것이 나의 가치나 자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자랑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나의 행함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행함인 것이고, 그래서 신자가 행하는 그 무엇도 은혜라는 것으로 고백되어질 뿐이지 ‘내가 했다’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새 생명의 가치를 마음에 둔 신자의 삶이고, 이것을 성화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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