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3.25 17:40

(성화 10강) 죄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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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6:6-11http://onlycross.net/videos/holy/rom-0606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설교>


신자라면 누구나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일까?’라는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이럴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의 현재 모습이 전혀 맞지 않을 때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로마서 6장을 읽다보면 이러한 고민에 더 깊이 빠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롬 6장을 읽어 보면 구원 받고 죄 사함 받은 신자는 아예 죄에서 해방되어 벗어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데 내 자신을 보면 여전히 죄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사도는 신자를 향해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아있는 것이 구원 받은 신자라는 뜻인데 과연 이것이 어떤 신자 됨을 얘기하는 것일까요?

 

 

많은 분들은 사도의 이 말을 행함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죽었다는 말을 죄를 범하지 않는 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가 말한 신자 됨을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면서 의로운 자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모습을 비춰보면서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신자답게 살아 보려고 말이나 행동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기도 하는데, 그처럼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되면 자신이 뭔가 달라지고 죄에서 점차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이 죄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무지로 인한 착각일 뿐입니다.

 

 

사람이 죄 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와 상관없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 계명을 행함의 시각에서 생각하게 되면 누구든 간음을 하지 않았다면 이 죄와 상관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합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 자체를 이미 간음한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죄를 행동이 아닌 심적인 것으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서 그 어떤 사람도 ‘나는 간음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죄 문제에 있어서 행동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작은 곁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죄 된 행동은 인간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악한 본성에 의해서 드러나는 흔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당에 있는 잡초를 뽑을 때 뿌리를 뽑지 않고 땅에 솟은 부분만 잘라낸다면 잡초는 다시 또 자라게 됩니다. 뿌리는 놔두고 땅에 드러난 부분만 자르면 겉은 깨끗할 수 있지만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잡초를 제거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처럼 행동을 조심하여 죄 된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죄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리하고 있는 죄의 뿌리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의 뿌리를 온전히 제거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잡초의 뿌리는 놔둔 채 드러난 부분만 제거한다면 잡초는 금방 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면 또 다시 잘라내기를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삶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다스렸습니다. 그로 인해 겉으로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 속에 있는 죄의 뿌리, 즉 인간의 악한 본성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율법의 기능을 잘못 사용한 결과입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뿌리 박혀 있는 악한 본성을 보게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참된 기능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이용해서 자신들을 거룩한 존재로 만들었고, 자신의 거룩에 가려서 죄의 뿌리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도는 무슨 이유로 신자를 죄에 대해 죽은 자로 말하고,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을 사람(6절)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여전히 죄의 모습이 있고 그것을 죄에게 종노릇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는 아직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이 아니고 따라서 구원 밖에 있으며 신자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도 역시 죄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고 애통해 하면서 자신을 죄인의 괴수로 고백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죄에 대한 사도의 말은 행함의 문제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6절에서 말하는 죄의 몸이 무엇일까요? 죄의 몸을 죄를 짓는 우리의 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죄를 짓는 것이 과연 우리의 몸, 즉 육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한 대로 죄는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악한 본성으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죄의 몸은 악한 본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은 악한 본성이 죽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실제로 우리 속에 있는 악한 본성이 죽고 제거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그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로 인해 죄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치러야 할 죄의 값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죄의 몸인 악한 본성이 살아있는 존재이지만 그 악한 본성은 이미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어 갈 권세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죄의 몸은 죽은 것으로 선언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신자는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인의 처분에 따라야 하고 그 지시를 받아 행동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있지 않습니다. 죄의 권세에 의해서 그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의에 의해서 생명에 속한 자로 그 운명이 결정되었기에 죄에서 벗어났고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즉 죄로 인한 심판과 사망이 없는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거룩의 세계고 이 거룩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 의미에서의 ‘성화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성화의 삶은 거룩해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한 신분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의 거룩이 누구로부터,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를 증거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그 감사함을 증거하는 것이야 말로 신자에게 요구되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죄에서 해방된 신자가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신자 됨은 우리를 거룩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함에서 거룩을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망을 하면서 자신의 구원에 의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보면 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시선을 여러분 자신에게 고정 시키지 마시고 예수님에게로 돌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시선을 예수님께 돌리게 되면 죄 밖에 보이지 않는 나 같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총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절망을 하되 예수님에 대해서 강력한 신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왕이면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내 자신이 좀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닌가 살펴봐야 합니다. 결국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자로 살고 싶은 것 또한 죄의 생각일 뿐입니다.

 

 

신자는 죄를 행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내가 아니라 주를 높이고 증거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입니다. 이 싸움이 있는 삶이 거룩한 자로써 거룩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성화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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