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2012.04.08 13:37

(성화 11강) 착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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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9:6-8http://onlycross.net/videos/holy/2co-0906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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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완성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이미 완성된 세계에 속한 것이 됩니다. 완성된 세계에 속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힘써서 이루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거룩과 구원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거룩과 구원을 위해 그 무엇도 요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대개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의 분위기는 열심에 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신앙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신자가 힘써야 이루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마치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완성이라는 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아직 자기중심적 신앙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완성이라는 말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없다는 뜻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루어야 할 것은 없지만 요구되는 것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성의 세계에 속한 신자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착한 일’로 말합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착한 일에 대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는 말이 착한 일을 많이 하라는 뜻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착한 일을 도덕적인 의미로 이해하게 되고 결국 도덕적 선행을 많이 실천하는 것을 구원 받은 신자가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가 말한 착한 일은 헌금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도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고린도 교회에 헌금을 부탁하면서 착한 일이라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착한 일이 다른 교회를 위해 헌금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착한 일이 단지 헌금하는 것이라면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는 말은 헌금을 넘치게 하라는 뜻이 되고, 결국 착한 일은 헌금을 넘치게 할 수 있는 부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도는 단지 헌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헌금 하는 자의 마음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을 7절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용해서 교인들에게 헌금할 때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사도의 말을 그대로 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는 것을 헌금을 적게 내는 것으로 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을 많이 헌금하는 것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헌금 액수 때문에 억지나 인색함이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억지나 인색함으로 헌금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헌금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신자가 어느 때 어쩔 수 없이 헌금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남의 눈을 의식했을 때입니다. 헌금할 마음은 없는데 신앙 좋음을 보여주기 위해 헌금하게 될 때 그 헌금은 억지가 되고 인색함으로 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헌금은 믿음과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즐겨 내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이름을 위해서 행하는 것도 아님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자로 하여금 즐겨 내도록 할까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는 지금 헌금에 대해서 말한다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 말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도 헌금을 말하면서 은혜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은혜를 받았으면 풍성한 헌금으로 은혜 받음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결국 자신이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많은 헌금을 해야 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헌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증거하고자 합니다. 사도의 관심은 헌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있었던 것입니다.

 

 

고후 8: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었는데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요와 가난은 재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요는 하늘의 영광된 존귀한 신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시되, 죄인의 몸으로 오시고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시고 비천의 자리에 처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난하게 되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으로 인한 우리의 부요는 하늘의 영광된 신분의 자리에 앉힌바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 신자는 부요한 자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부요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재물이 늘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요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고, 신자 된 자신 역시 부요한 자로 여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신자답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는 헌금을 통해서 신자의 부요함을 증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 신자가 어떤 부요를 누리고 있는가를 증거함으로써 은혜의 세계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 사도의 의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헌금이 아니라 은혜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신자의 부요함을 모를 때 인색함과 억지로 헌금하게 되고, 부요를 알게 되면 즐겨 내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신자가 돈이 아까워서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헌금은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6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 역시 많이 거두려면 많이 심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입니다. 즉 헌금을 많이 하면 많이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이 거두기 위해서 많이 헌금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많은 돈을 헌금한다고 해도 그 중심에는 역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사실을 잘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이 심든 적게 심든 심었기에 거두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많이 거두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많이 심으려고 합니다. 이처럼 많이 거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신자의 부요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적게 심든 많이 심든 신자에게는 심을 것이 있습니다. 즉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내어 놓을 것이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얼마를 내어 놓든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함으로써 신자가 은혜 아래 있고 부요한 자로 살아감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을 사도는 착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자신의 부요를 깨달으며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착한 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신자가 즐거움으로 하는 그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주의 은혜를 나타내고 전하는 것이 착한 일이며, 이 착한 일이 넘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날 위한 은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한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즐거움으로 내는 헌금은 12절의 말씀대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합니다. 13절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단지 헌금을 받아서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구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도우시고 살리시는지 그 은혜를 깨닫게 된 것으로 인한 감사입니다.

 

 

은혜를 받았고 은혜를 아는 신자의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함께 하는 지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신자에게 넘쳐야 할 착한 일입니다. 신자의 부요를 깨달으시고 여러분의 부요가 다른 이에게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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