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3.13 23:41

(성령 9강) 성령과 몸의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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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8:12-14http://onlycross.net/videos/spirit/rom-0812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설교>

사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영, 즉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산다는 뜻이 됩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의 인도라는 문제에 들어가면 항상 뭔가 확실한 것을 보지 못하고 애매한 느낌을 갖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기도 응답에서 체험하고, 방언이나 병 고침을 통해서 체험하고 확인한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인도가 아닙니다. 즉 성령 받은 모든 신자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2-13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육신대로 사는 것을 육신에게 진 것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합니다. 사는 길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오직 영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14절과 연결하여 이해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하나님의 아들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로 산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함께 하고 성령으로 인도 받으며 사는 신자는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몸을 행실을 죽이는 자로 산다면 그것이 곧 성령이 여러분께 함께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증거가 됩니다.

 

 

이것으로 신자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지는 것 같지만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몸의 행실은 몸으로 행하는 행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일도 몸의 행실이고 나쁜 일도 몸의 행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가 죽이라고 말하는 몸의 행실은 분명 나쁜 행실을 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나쁜 행실을 죽이도록 인도하시고 그것이 곧 신자가 사는 길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과연 이 같은 말이 사도가 전한 복음과 일치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서로 충돌되는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의 복음은 신자가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행함, 실천적인 문제로 이해하게 되면 신자가 나쁜 행실을 죽이는 실천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되기에 사도의 복음과는 충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사도가 말하는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말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도는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나쁜 행실을 고치고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나쁜 행실이 있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악한 행실을 덮어 주시고 용서하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쁜 행실을 죽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나쁜 행실을 도둑질, 살인, 강도, 사기 등과 같은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미움도 나쁜 행실이고 시기나 다툼이나 수군수군 대는 것이나 남을 비방하고 비판하는 것 모두도 나쁜 행실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실이 우리에게서 사라졌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믿고 애를 쓴다고 해도 그 행실들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함께 하면 그러한 행실이 모두 죽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함께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서는 여전히 나쁜 행실이 왕성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몸의 행실을 윤리와 도덕적인 의미의 나쁜 행실로 이해하게 되면 이러한 혼란과 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몸의 행실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사도는 우리가 빚진 자라고 합니다. 이 빚은 하나님께 지고 있는 것이고 당연히 사랑의 빚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죄로 인해 죽을 몸이 다시 사는 생명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우리를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보증이 됩니다. 만약 성령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보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만을 보며 사는 것이 곧 멸망의 길임을 깨달으며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소망하면서 예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둔다면 그것은 성령이 함께 하신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마음을 붙드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실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의 인도가 함께 하기 때문에 결국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자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에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육신으로 구원을 이뤄보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율법적인 삶을 살 때 부각되는 것은 인간의 행함에 따른 의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밀쳐 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는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사랑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이기에 사랑 앞에서는 송구스러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행하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사랑에 빚진 자로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하나님의 영이 오심으로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도는 이것을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라는 말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 율법적인 삶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죄를 이겨서 의를 실천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인 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만을 구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 있지만 그 죄는 이미 힘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힘은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힘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었고 구원을 위해서 별도의 의를 행하거나 실천해야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같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육신으로 의를 이루고자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육신에 진다는 것은 육신으로 의를 실천해야 믿음이 있는 신자라는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육신으로 의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자기 믿음에 대해 불안해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의 의를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래서 우리가 행해야 할 의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죄인 됨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또 깨달으면서 사랑에 감사하면 됩니다. 이것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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