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7.08 13:05

(구원 10강) 구원의 절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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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8:20-22http://onlycross.net/videos/save/jen-08202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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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설교>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출발 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성취로 인한 자기만족의 세계를 은혜로 착각한 채 헤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의 세계는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하셨다는 자기만족의 세계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셨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만족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하심이 충만으로 자리할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것이야 말로 구원의 절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노아가 홍수가 끝난 뒤에 방주에서 나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내용입니다. 홍수 심판의 원인은 알다시피 인간의 죄에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만약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의가 포함되어 있다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보실 때 세상에는 죄 밖에 없었습니다.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실 정도로 죄로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일에 불만을 갖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를 짓게 된 것에는 하나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애당초 죄를 이길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셨다면 죄를 범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새로 구입한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면 그 책임이 자동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만든 회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그럴듯한 논리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으신 창조주가 있다면 인간에게서 발생한 문제는 창조주의 책임이 아니냐는 것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논리에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죄의 원인을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려고 하는 또 다른 죄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으로 감사할 뿐이지 ‘왜 이런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라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죄의 원인을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게로 돌리기 때문에 심판이 부당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점을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 그 어떤 것도, 설사 우리를 심판하시고 재앙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원인이 내게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홍수 심판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는 것이 마치 창조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처럼 들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가 하나님의 계획의 전부였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단지 세상을 지으신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고후 5: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은 기존의 것의 잘못된 부분을 새롭게 고쳐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은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 새로운 피조물이 어떤 존재인가를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고후 5:17절의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은 홍수 심판을 두고 생각해 보면 홍수 심판 전의 사람과 심판 후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을 홍수 심판의 후의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 후의 사람은 노아 가족 그대로입니다. 노아 가족까지 심판으로 다 죽이시고 전혀 다른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인데 홍수 후의 노아 가족은 홍수 전과 달라진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외적인 이야기입니다.

 

 

홍수로 인해서 노아가 경험한 것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건짐 받았음을 경험했습니다. 노아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해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에 처한 자신을 하나님이 건지셨음을 알게 된 것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기존의 피조물은 자신이 죄로 인해 죽음에 처한 존재임을 알지 못합니다. 항상 세상만 눈에 들어 올 뿐이고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확대하는 것만이 삶의 의미고 목적일 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 또한 자신의 성취로 인해 경험할 뿐입니다. 즉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는 아예 관심 밖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하신 말씀은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21절)입니다. 그리고 9:11절에 보면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기를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두십니다.

 

 

하나님은 무작정 사람이 악해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번제의 향기를 받으시고 그 향기로 인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번제의 향기는 정결한 제물의 희생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온전한 제사를 드리신 것이 하나님께는 향기가 되신 것입니다.

 

 

그 향기를 받으시고 우리를 다시는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절대성입니다. 신자의 구원은 절대적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만큼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희생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롬 8: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죄인 된 우리에게 이보다 절대적인 말씀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이 말씀이 구원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신의 행위로 스스로를 정죄하면서 구원의 문제에 대해 불안해하고 의심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근거로 삼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절대적이니 안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자기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는 헛된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그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고 복의 이유가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자기 구원을 위해서도 복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만약 자신의 구원이나 복을 받는 일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뭔가를 행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처럼 자신을 위해서 행하기 때문에 행함을 자기 의로 삼고자 하고 다른 사람과의 차별의 근거로 삼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밖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자가 구원의 절대성을 안다면 자신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모든 근거를 예수님께 두면 자신을 죽음에서 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와 사랑으로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가 감동이 되어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이야 말로 절대적 구원의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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