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2012.07.15 16:48

(구원 11강) 실현된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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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설교>

본문은 예수님이 자라나신 나사렛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이사야의 책을 받아들고 한 곳을 읽으셨습니다. 회당은 지금의 예배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에는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회당이 세워졌고 큰 도시에는 여러 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대교가 이 회당을 중심으로 존속해 왔다고 할 정도로 회당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존속에 예배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면 회당에 모여서 랍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었는데 지금의 담임목사처럼 예배를 인도하고 감독하는 직책을 수행했었습니다. 이 회당장이 안식일에 모인 사람들 중에 랍비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것을 맡기기도 했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읽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랍비로 인정을 받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은 소위 사회운동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십자가 정신의 근간으로 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을 현실적 시각으로 본다면 사회에서의 소외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돕는 것이 참다운 기독교이며 십자가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교회의 본질로 이해하고 십자가 정신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오시고,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것처럼 오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마치 예수님의 관심 밖에 있는 것처럼 비춰지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가난하고 포로 되고 눈멀고 눌린 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악한 세력에게 붙들리고 지배받으며 살아가는 인간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난하지 않고 포로 된 자도 아니며 눈이 멀지도 않았고 눌린 자도 아니라면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해방과 자유를 의미합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해방과 자유가 불필요합니까? 만약 ‘나는 가난하지도 않고 포로 되지도 않았고 눈멀지도 않았고 눌려 있지도 않다’라고 생각하신다면 해방과 자유를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속이 아닌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일 뿐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진 것이 있습니까? 가진 것이 있다면 그 증거는 마음의 풍요로 나타날 것입니다.

 

 

가졌기에 만족이 있고 만족은 여유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고 해도 돈이 우리의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지 못합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더 채우려고 할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며 이런 인간을 두고 부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을 부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부요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마음이 부요하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복음을 알게 됨으로써 심령이 부요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선지자의 예언이 응한 것이며 구원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포로 되었다는 것도 세상을 향한 욕망에 붙들려 사는 우리의 실상을 보면 알 수 있고, 눈이 먼 자라는 것도 말씀을 세계를 보지 못하고 세상만 보고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으며, 눌린 자라는 것도 항상 잘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로지 세상을 목표로만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도 자기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복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만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로서의 참된 열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의 구원이 우리의 삶에서 실현된다는 것에도 실감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구원을 생각하십니까? e대개의 사람들은 죽어서 천국 가는 구원을 생각합니다. 물론 구원은 영원한 천국, 생명의 나라에 들어감으로 영광에 참여하고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그때가 오기를 막연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일 뿐입니까? 현실에서의 삶은 구원 밖에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세상에 목적을 둔 채 세상 것을 열망하며 살다가 예수님이 오시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신자는 이미 구원에 참여된 사람이고 따라서 구원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신자는 이미 구원이 실현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완성은 아니지만 구원을 믿고, 구원을 소망한다는 것이 이미 구원의 길을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이 실현된 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의 실체일 뿐입니다. 그런 자신의 실체를 보면 구원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구원이 완성되었을 때 누리게 되는 것이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지금은 죄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고 구원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열망하는 것이 달라진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요를 원합니다. 포로 된 자는 당연히 자유를 갈망하게 됩니다. 눈 먼 자는 보기를 원할 것이고 눌린 자는 자신을 누르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즉 해방과 자유, 이것이 이들의 공통된 열망입니다.

 

 

그런데 해방과 자유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면 이것을 깨달은 신자의 열망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더 깊이 알고 싶고, 예수님을 체험하기를 열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해 해방과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하는 것이야 말로 구원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현실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 것이 우리에게는 구원이 이미 실현된 사건입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만 바라보면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걸림돌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여전히 세상일로 인해서 불안해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넘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원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자에게는 복음으로 인해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주어진 해방과 자유라는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 간절함이 우리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간절함이 있어서 예수님이 베푸신 십자가의 은총에 대해 기쁨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살아있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구원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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