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7.03 13:53

(성령 23강) 성령과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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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4-11http://onlycross.net/videos/spirit/1co-120411.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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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설교>

 

사람은 자신이 높아지고 잘난 자 되는 것에서 세상 살 맛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에 비해 자신을 더 우월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것으로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의 영광을 취하고자 하는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자신의 현주소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됨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만이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선으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악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은사에 대한 것입니다. 은사는 많은 신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은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가 은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신앙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는 것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의식적으로는 그런 이유를 내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은사를 원하는 내면을 면밀히 살펴보면 은사로 말미암아 특별한 신앙인으로 자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은사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결국 은사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게 됩니다. 누구의 은사가 더 나은지 서로 경쟁하고 차별하게 되고 결국 분열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실상이었고 이로 인해 사도가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의 의미보다는 은사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때문에 은사를 더 낫고 못한 은사로 구별하면서 더 나은 은사를 받은 사람은 우월감을 가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은 폐단입니다.

 

 

먼저 은사는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도를 유익하게 하기위한 봉사의 수단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사도는 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은사를 각 사람에게 성령이 나타난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은사는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성령은 각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성령은 분명 한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각 사람에게 어떤 은사로 나타나셨든 그것은 모든 이가 성령의 간섭과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구별하면서 그것으로 성령의 역사의 정도가 각기 다르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을 기억한다면 은사는 형제에게 봉사하게 위한 수단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은사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랑과 우월감으로 나아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반대로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열등감과 불안감을 갖게 합니다. 남들과 같은 은사가 없는 것을 마치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은사를 자기 자랑과 우월의 수단으로 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큰 문제이며 잘못됨입니다.

 

 

만약 은사를 형제를 유익하게 하기 위한 성령의 나타남으로만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은사가 주어진 이유와 그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따라 자신을 바라본다면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4-6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은사와 직분 사역을 여러 가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양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하다는 것일 뿐 높고 낮음이라는 격차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은사는 같은 성령의 나타납니다. 직분 역시 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은사의 높고 낮음이 있고 직분의 높고 낮음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과 주의 일에 격차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 됩니다. 즉 성령과 주, 그리고 하나님이 신자를 차별 있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과 주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성령과 주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신자 역시 차별이 있다는 뜻인데, 이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동일한 자리에서 부름을 받았다는 성경의 선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8-10절을 보면 사도는 다양한 은사에 대해 말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은사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도는 지금 다양한 은사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은사에 대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가 말하는 다양한 은사들이 신자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한 은사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 방언 말함, 방언 통역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은사가 성령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까요? 당연히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마음에 두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성령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인해 나타난 은사는 은사 받은 그를 주 예수께로 인도하는 것이 참된 의미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남들에게는 없는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으로 자기 신앙을 나타내 보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게 됩니다. 병 고침이라는 것도 우리를 고치시는 분으로 오신 주를 바라보게 합니다. 방언 역시 세상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복음을 통해서 주를 알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십자가를 믿으며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까지 자신이 가야 할 길임을 믿는다면 그는 분명 주를 바라보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령의 나타남의 결과이며 따라서 은사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은 모든 신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마음에 두는 자로 믿음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고난이며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역시 성령의 나타남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은사가 없는 신자는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을까?’궁금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사도가 말한 은사의 항목을 자신에게서 찾고자 한다면 결국 ‘나는 은사 받은 것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면 은사가 없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겠죠?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옛 사람으로서의 욕망일 뿐입니다.

 

 

롬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을 은사로 말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은사와는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섬김과 가르침, 구제, 긍휼 또한 그리스도를 미음에 두고 사는 신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은사는 어떤 항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마음에 두고 산다면 예수님의 용서가 나와지고 섬김이 나와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형제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형제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를 알고 주를 믿으며 주를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에 차별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신자는 모두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은사를 받은 자로 삽니다. 이 은사로 항상 예수님을 마음에 두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형제를 유익하게 하는 삶이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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