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2011.07.17 13:59

(성령 24강) 성령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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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1:1-6http://onlycross.net/videos/spirit/act-21010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

 

신앙은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함께 하는 교회를 가리켜서 ‘성령공동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교회인데, 우리는 성령이 누구신지,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성령의 개입과 활동으로 인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인간이 주도하는 신앙생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인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나의 뜻과 열심에 의한 신앙생활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까지 성령에 대해 배웠습니다. 성령이 누구시고 왜 오셨으며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신자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이 무엇인지 많은 것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성령을 단지 ‘생명의 영’으로만 알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서 성령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한 마지막 시간으로 성령의 감동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흔히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자신의 내면에 어떤 깨달음과 그에 따른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깨달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의 생각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너무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을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습니다.

 

 

즉 내면에 어떤 변화나 흔적이 없는 성령의 감동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내면 상태로 살아갈 때는 성령의 감동과는 상관없이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거나 마음이 기울어지는 쪽을 성령의 감동이나 응답으로 여기는 극히 주관적인 생각에 머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을 그렇게 이해하게 되면 결국 자신을 기준으로 성령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순간순간의 자기 마음의 움직임이 있게 됩니다. ‘내 마음이 이쪽으로 움직였는데 그것이 성령의 감동이다.’라는 식으로 성령을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삶을 주도하시면서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은 신앙생활에서 간혹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이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붙들려 인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사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를 하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심각한 핍박을 받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제자로써 스승이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제자들의 만류를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라는 것입니다. 행 20:22-24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각 성을 통한 증언으로 인해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성령이 제자들을 감동하게 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도를 만류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을 이끄는 성령과 제자들을 감동하게 한 성령이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래서 이 내용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제자들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은 사도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었지만, 제자들은 인간적인 판단과 감정을 앞세워서 사도를 만류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핍박이 있음을 알게 된 것까지가 성령의 감동이고 사도를 만류한 것은 인간적 판단과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믿음에 의한 말을 했다면 ‘예루살렘에 가면 핍박이 있을 것이지만 두려워 말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예수님이 반드시 지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럴듯한 해석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이해를 위한 인간 편의주의의 해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성경의 내용에 충실하지 않는 해석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사도 바울이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제자들을 통해 나타난 성령의 뜻을 거부한 것이 됩니까? 하지만 사도에게 나타난 성령의 뜻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바울은 성령의 이끄심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에 의한 제자들의 만류를 이해할 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 것이 성령의 뜻이고 인도라고 생각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10절 이후에 보면 제자들을 떠난 바울이 가이사랴에 이르러 빌립의 집에 들어가 머무를 때 유대로부터 온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의 띠로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11절)고 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가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역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고 말합니다. 이 말은 행 20:23-24절의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의 연장선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이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는 그것이 곧 자신이 달려갈 길이고 사명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자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가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복음이 전해지는 기회와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가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몇 명을 전도했는가라는 결과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들이 복음의 사명을 받은 자가 달려갈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바울과 제자들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뜻이 각기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사명을 받은 자로서 달려갈 길이 무엇이고, 우리의 생명보다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과 인도함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던 중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말은 성령의 말이기에 거부하면 안된다는 것을 암암리에 요구하는 의도의 말일 뿐입니다. 지금은 성령이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나서 특별한 계시를 주는 시대가 아닙니다. 계시는 성경의 말씀으로 종결되었고,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의 세계로 인도하며 복음의 사명을 받은 자로써 복음의 귀함을 알고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역사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매일의 삶입니다. 그렇게 보면 신자가 세상을 사는 것은 매 순간순간이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 주의 은혜를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되고 그래서 주가 곧 나의 생명이라는 고백이 있는 삶으로 이끌려 가는 그 모든 과정들도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핍박을 받은 바울을 보면서 복음을 맡은 사명자의 달려갈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깨닫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 이것이 제자들의 성령의 감동의 의미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 것이기에 제자들의 말이 성령의 뜻이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제자들을 감동하며 어디로 이끄시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충고하시며 마음을 감동케 하시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을 만나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나만을 위해 사는 우리를 주님이 존귀하심을 아는 자로 만들어 가시고,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맡은 자로서 나의 생명은 조금도 귀하지 않다는 고백이 있는 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 매일같이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감동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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