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26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롬 14:17-19http://onlycross.net/videos/church/rom-14171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설교>

 

바울이 서신을 보낸 로마 교회에는 갈등이 있었으며 그 원인은 신앙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에는 이방인 신자와 유대인 신자가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예수를 믿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율법과 상관없이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은 후에도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곧 거룩한 신자 됨을 이루는 것으로 여기고 살았던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를 믿은 후에도 여전히 신자의 거룩 됨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신자다운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갈등 속에서 서로의 신앙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틀렸다면 비난하고 비판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다르기 때문에 그들 중 한쪽은 틀렸고 한 쪽은 맞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습니까? 하지만 이처럼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렸다’는 판단은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됨에서 멀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누군가의 말에 대해 맞다 틀렸다는 판단을 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생각이 참된 진리인지는 누구도 판단하거나 답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복음에 무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무지한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뭔가 조금씩 알아가고 깨달아가는 것이 있을 뿐인데, 그런 우리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누군가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이냐 복음이 아니냐’라는 분별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분별이지 판단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말도 지식도 아닙니다. 진리에 부합된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고, 신앙이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세계를 알게 하고 그 길을 가도록 도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할 권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를 옳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옳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주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것이 진리가 안고 있는 본질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본질을 깨닫고 그 본질의 세계에 속한 자로 진리를 말한다면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으로 형제를 대하지 않게 됩니다.

 

 

설령 누군가가 진리에서 벗어난 말을 한다고 해도 나 역시 진리 밖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비판과 판단으로 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자신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보고 말씀으로 자기를 판단하기 때문에 늘 어리석고 무지하고 진리에서 멀어져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서 판단이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판단은 곧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요? 바울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서 ‘양쪽 다 맞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는 ‘다 맞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합니다.  즉 비록 신앙에 대한 생각과 말은 다를지 몰라도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고 날을 지키는 것으로 세워지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은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먹고 마시는 문제로 누가 옳은가를 따지며 다투고 서로 판단을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진리를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에서 율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아예 구원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회의 율법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다른 복음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율법을 가르쳤던 거짓 사도들은 구원은 믿음만으로는 안되고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반면에 로마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믿음 안에서의 삶의 문제를 두고 자유나 아니면 신자로서 지켜야 할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4장을 보면 사도는 한 복음 안에서 신자가 서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보다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지식으로 나와 다른 형제를 판단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비판과 판단을 통해서 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성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를 함께 누리고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 안에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구별되거나 서로를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지식은 다르나 주를 향한 마음이 같다면,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고 예수님의 피가 나를 구원하는 의가 됨을 고백한다면 그것으로 형제의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5,6절을 보면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을 거룩한 날로 여기며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주 안에서 특별한 날은 없고 모든 날이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일 성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 맞습니까? 지식을 근거로 하면 이쪽이 틀렸고 저쪽이 틀렸다는 답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 날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날을 중히 여기고 중히 여기는 것에 있게 됩니다.

 

 

사도는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도 모든 나를 갖게 여기는 사람도 모두가 주를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주를 위하는 그 마음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고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지식에서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주를 향한 마음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식으로 하나 되는 것이 교회라면, 우리는 예수님은 팽개치고 ‘누구든 이 말이 맞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 모여라’는 식이 돼 버립니다. 그리고 이 지식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잘라내면서 복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을 지키는 단체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은 진리에 부합된 지식이고, 다른 한쪽은 진리에서 벗어난 지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식이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 마음도 예수님에게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같은 말과 같은 생각 같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향한 같은 마음을 가지고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대 교회는 의견이 대립되면 쉽게 다툼과 분란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모이는 결과입니다.

 

 

교회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합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누리게 되는 것들입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가 우리를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든 나를 의롭다 옳다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의와 옳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의롭고 옳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다툼이 사라지고 평강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평강의 관계에서 서로가 주로 말미암아 기쁨을 나누게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을 세우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힘쓰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나라로 모이는 교회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 교회 (교회 15강) 교회와 권징 신윤식 2011.11.27 4027
38 교회 (교회 14강) 교회와 봉사 신윤식 2011.11.20 4009
37 교회 (교회 13강) 교회의 속성 신윤식 2011.11.13 4231
36 교회 (교회 12강) 교회의 정체성 신윤식 2011.11.06 4107
35 교회 (교회 11강) 교회와 직분 신윤식 2011.10.30 4291
34 교회 (교회 10강) 교회와 구원 신윤식 2011.10.23 4062
33 교회 (교회 9강) 교회의 사명 신윤식 2011.10.16 4282
32 교회 (교회 8강) 교회의 일치 신윤식 2011.09.18 4151
31 교회 (교회 7강) 살아 있는 교회 신윤식 2011.09.11 4687
30 교회 (교회 6강) 교회와 세상 신윤식 2011.09.04 4148
» 교회 (교회 5강) 교회와 하나님 나라 신윤식 2011.08.28 4264
28 교회 (교회 4강) 교회와 복음전파 신윤식 2011.08.21 4861
27 교회 (교회 3강) 교회의 사랑 신윤식 2011.08.14 4290
26 교회 (교회 2강) 교회의 비밀 신윤식 2011.07.31 4549
25 교회 (교회 1강) 교회는 신윤식 2011.07.24 5190
24 성령 (성령 24강) 성령의 감동 신윤식 2011.07.17 4726
23 성령 (성령 23강) 성령과 은사 신윤식 2011.07.03 4157
22 성령 (성령 22강) 양자의 영 신윤식 2011.06.26 4253
21 성령 (성령 21강) 하나 되게 하신 성령 신윤식 2011.06.12 4492
20 성령 (성령 20강) 지혜와 계시의 영 신윤식 2011.06.05 453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